나, 일상, 삶, 그리고...

먼지는 어떻게 쌓이는가...

오애도 2004. 1. 19. 02:04
단칸방의 생활에서 느닷없이 세칸이나 되는 넓은-??- 집으로 이사와 산 지가 어언 다섯 달 째입니다.
안방은 당연히 침실로 쓰고 있고 작은 방은 이런저런 일을 하는 업무용 방입니다.
그리고 거실은 당연히 생업을 위한 현장이구요.

낮에는 거의 컴퓨터가 있는 작은 방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안방은 당연히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잠자기 위해서나 속옷을 갈아입는다거나 하는 일 아니면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세 칸 집을 종일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면 쓸 데 없이 넓은 공간을 혼자서 차지한 채로 실속없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게 됩니다.

그거야 어쨌든 잠자는 일 외에는 자기전 누워서 책보는 일이 전부인 큰방에는 어찌하여 소리도 없이 뭉텅이 먼지가 쌓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청소를 매일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루 지나고 겨우 이틀만에 옛날 서부영화의 황량한 벌판에 날려다니는 나무-그게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키는 작고 잔가지는 잔뜩 달려있는 마른 나무가 먼지 가득한 들판에서 바람에 휘휘 굴러 다녔다. 그곳에 고약하게 생긴 리 반 클립이다.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을 타고 묘하게 휘파람 섞인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했다.-무데기같은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이 먼지 덩어리는 어쩐 일인지 섬유질이 상당해서 정말 무슨 봉제공장에 몰려 다니는 먼지 덩어리와 비슷합니다.

뭐 다 큰 어른인 나는 당연히 부산스럽게 다니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이 안방엘 들어와 먼지 뭉테기를 떨어트릴 일도 없는데 먼지라는 놈은 밤새 번식력 좋은 박테리아처럼 여기저기 생겨서 지들끼리 뭉쳐있는 것입니다.
간이 진공청소기로 드르륵 한 다음에 그걸 털기 위해 열어보면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먼지에 늘 놀랍니다.

그러고보면 먼지라는 것은 저 혼자 생명력을 가지고 불어나고 돌아다니고 정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드나들지 않는 방에도 세월의 더께처럼 먼지는 소리없이 쌓여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디로 들어와 그렇게 조용히 내려앉아 있는 것일까요?

흔히 영화같은 데서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사실을 묘사할 때 주로 쓰는 수법이 바로 두텁고 고운 먼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걸 보면 아마 그렇게 소리없이 쌓이는 먼지야말로 보이지 않는 세월의 두께이자 무게일지도 모르겠군요.
이곳으로 이사와서 시간이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크고 많은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보면요.
어쨌거나 먼지는 소리없이 도둑처럼 들어와 쌓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과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도 도둑처럼 슬금슬금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느닷없이 뒤돌아보면 우린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생각보다 먼 길을 와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툭툭 먼지처럼 털어내고 다시 깨끗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만이 다른 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