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마흔 고갯턱을 넘다.

오애도 2003. 12. 27. 00:51
한 달전 쯤 대학 때 스승을 만났습니다.
늦게 학교엘 들어간 탓에 전임강사였던 그 분과는 나이차이가 별로 없었는데 거의 10년만에 교수실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드린 책을 설렁설렁 넘기다가 내게 물으셨습니다.

마흔이야? 벌써... 빠르네 세월이... 마흔이 되서 보니 세상이 어때?

그때 내가 대답했었습니다.

세월이라고 할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던걸요. 느릿느릿 강물이 흘러가듯이 그것들은 흘러갑니다.
나는 거기서 발을 빼고 길 옆 혹은 강둑에 앉아 흐르는 물을 보듯이 그렇게 그것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나는 거기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흔적도 없이 그 속에 휩쓸려 가고 있었겠지요. 지금은 발을 빼고 멍청하니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어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감정의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얇아지고 어떤 부분에서는 또 말할 수 없이 두터워졌다는 것도 실감하구요....
그 말에 그분이 싱긋 웃었습니다.

지난 봄에 아는 사람과 차를 타고 남산 터널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터널입구를 향해 달릴 때 그 남산의 푸르름이 얼마나 선명하던지요. 그 연녹색의 선명한 푸르름이 더풀! 녹색 보자기가 되어 나를 덮어올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내내 마흔이 넘어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그때 그 선명한 느낌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어찌하여 늘 보던 봄날의 연녹색이 그렇게 온몸 절절히 파고들었을까요.
그 때, 이것이 감정의 부박함이군...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처럼 동동 팔딱 거리다가도 겨울 코끼리처럼 만사 두리뭉실 느릿느릿 둔감해지는 감정의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역시 올 해 생긴 증세입니다.

괜히 몸이 좀 바빴습니다.
그러므로 길 옆이나 강둑에 서서 흐르는 강물 보듯 시간흐름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마흔 고갯턱을 넘는다는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그리하여 이 즈음의 내 무기력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처음-???- 보낸 마흔 나날들의 후유증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이루어 내고 쌓아놓은 것 없어보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행복하지도 행복해질 것 같지도 않았었습니다.
무엇 하나 진지하게 열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몸은 바빴는데 머릿속은 텅 빈 듯 보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고여있었습니다.

나아지겠지요?

사족: 혹여 시집 안간 노처녀 조울증세라고 하진 마십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