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오애도
2003. 11. 25. 12:17
잔뜩 흐린 하늘입니다.
하룻저녁을 몸을 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한 집안을 일없이 어슬렁거렸습니다. 잠옷을 입은 채로 신문을 들여오고 물고기 밥을 주고 빈 솥을 열어보고 먹다 남은 찌개냄비를 보고 임신한 여자처럼 잠깐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백화점엘 갔었습니다.
붉고 선명한게 반짝이는 바탕에 앙증맞은 리본보양의 버클이 달린 지갑을 하나 샀습니다. 뒤적뒤적 쌓여있는 지갑을 뒤적이면서 마음 담기지 않은 말들을 판매원과 주고 받았습니다.
지하 식품매장에 들러 수제소세지 한묶음을 사서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이 공부하러 왔었습니다.
서정주의 '추천사'와 '춘향유문'을 설명하면서 이유없이 가슴이 묵직하게 아파왔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갖고 있단다.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만 하는 한계지. 그 땅은 곧 현실이고... 그것은 과학시간에 배우는 중력의 법칙때문은 아닐 걸. 그리하여 사람들은 오랫동안 날고 싶어했지.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날고 싶어할까? 그것은 벗어나고 싶은 현실때문이야. 춘향은 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걸까? 그 이유야 말 안해도 알겠지? 그네를 뛴다는 행위는 그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린 그네는 결국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그리하여 자각한단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그 가슴아픈 자각에서 오는 체념을 이해하니? 그럼에도 향단이를 향해 그네를 밀어달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힘차고 진진한 애정 아닐까? 때때로 시는 한편의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조각조각 난도질하며 시를 배우지만 이렇게 가끔 전체가 하나의 축축한 정서 덩어리로 뭉쳐올 때도 있습니다.
문득 그걸 설명하면서 발작처럼 슬픔이 울컥 일었습니다. 목소리가 잠깐 떨렸을지도 모릅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매달린 줄에 의해 공중으로 비상하는 인간의 쓸쓸함같은 게 스멀스멀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멀쑥하니 키가 크고 선량한 얼굴을 한 두 아이는 아... 하면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르치면서 때때로 나는 아는 걸 넘어서 깨달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그들에게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아니라 삶이라는 걸 그들은 알는지...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종일 버려진 우물의 말라가는 우물물처럼 조용히 침착하게 고여있었습니다.
저녁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산책을 갔었습니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낡은 신발안에 들어와 발바닥을 불편하게 하는 굵은 모래처럼 그렇게 마음 속에서 그 시구가 돌아다녔습니다.
신발 벗고 툭! 털어버리듯 그렇게 털어버려지지 않는게 이상했습니다.
하룻저녁을 몸을 앓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한 집안을 일없이 어슬렁거렸습니다. 잠옷을 입은 채로 신문을 들여오고 물고기 밥을 주고 빈 솥을 열어보고 먹다 남은 찌개냄비를 보고 임신한 여자처럼 잠깐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백화점엘 갔었습니다.
붉고 선명한게 반짝이는 바탕에 앙증맞은 리본보양의 버클이 달린 지갑을 하나 샀습니다. 뒤적뒤적 쌓여있는 지갑을 뒤적이면서 마음 담기지 않은 말들을 판매원과 주고 받았습니다.
지하 식품매장에 들러 수제소세지 한묶음을 사서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이 공부하러 왔었습니다.
서정주의 '추천사'와 '춘향유문'을 설명하면서 이유없이 가슴이 묵직하게 아파왔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갖고 있단다.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만 하는 한계지. 그 땅은 곧 현실이고... 그것은 과학시간에 배우는 중력의 법칙때문은 아닐 걸. 그리하여 사람들은 오랫동안 날고 싶어했지.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날고 싶어할까? 그것은 벗어나고 싶은 현실때문이야. 춘향은 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걸까? 그 이유야 말 안해도 알겠지? 그네를 뛴다는 행위는 그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린 그네는 결국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그리하여 자각한단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그 가슴아픈 자각에서 오는 체념을 이해하니? 그럼에도 향단이를 향해 그네를 밀어달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힘차고 진진한 애정 아닐까? 때때로 시는 한편의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훨씬 긴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조각조각 난도질하며 시를 배우지만 이렇게 가끔 전체가 하나의 축축한 정서 덩어리로 뭉쳐올 때도 있습니다.
문득 그걸 설명하면서 발작처럼 슬픔이 울컥 일었습니다. 목소리가 잠깐 떨렸을지도 모릅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매달린 줄에 의해 공중으로 비상하는 인간의 쓸쓸함같은 게 스멀스멀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멀쑥하니 키가 크고 선량한 얼굴을 한 두 아이는 아... 하면서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르치면서 때때로 나는 아는 걸 넘어서 깨달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그들에게 주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아니라 삶이라는 걸 그들은 알는지...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종일 버려진 우물의 말라가는 우물물처럼 조용히 침착하게 고여있었습니다.
저녁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산책을 갔었습니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낡은 신발안에 들어와 발바닥을 불편하게 하는 굵은 모래처럼 그렇게 마음 속에서 그 시구가 돌아다녔습니다.
신발 벗고 툭! 털어버리듯 그렇게 털어버려지지 않는게 이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