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오애도 2003. 11. 4. 10:37
지난 주 내내 몸도 마음도 많이 바빴습니다.
사흘은 동침자가-물론 여자다!!- 있었고, 거의 매일 손님이 있었고-그것도 어느 땐 두 세 팀씩!!-, 밀린 수업도 길게 했었고, 새로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도 열심히 했었고, 나가지 않은 또 하나의 방 때문에 골머리를 썩였지요. 그러는 사이 가을은 슬금슬금 끝자락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부석사엘 다녀왔습니다.
쓰린 속을-전날 과음 땜시로^^;;-부여잡고 김밥을 싸고 무우김치를 부스럭거리며 준비했었습니다.
아침 일찍 날아갈 듯 부는 바람을 헤치고 갔었지요.
서울 근교가 한창 단풍이었습니다.
부석사는 매년 -작년엔 두 번이나 갔었다- 갈 때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절 위의 푸른 하늘색깔입니다.
주저리주저리한 미사여구가 오히려 흠이 될 지경으로 그 하늘빛은 얼마나 짙은 푸른 색이던지요. 짙은 코발트불루의 물감을 두껍게 짜놓고 거기에 절대로 설명 안될 깊이를 재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잘 드는 면도날로 스윽 베어내면 푸르고 투명한 색깔 덩어리를 스치로폴 자르듯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 말고 누구하나 하늘 따위에 감탄하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묵묵히 땅만 바라보고 절 길을 올랐다.-

다른 어떤 것도 말고 그곳에 가서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보시길... -지난 겨울, 어린 제자와 갔을 때도 우린 하늘색에 감탄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 봅니다.
어느 소설 제목인지 영화제목인지 그래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자 하는 것도 있지만 나는 하늘 올려다보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식빵 두 쪽만한 부엌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낮춰 하늘 색깔 먼저 봅니다.
마치 이불 빨래라도 해야할 것처럼 말입니다.
터덜터덜 밤중에 운동을 갈 때도 일곱번쯤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혹 서럽도록 차가운 달이라도 떠 있으면 잠깐동안 멍청이 서서 올려다보고 있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하늘을 보고 같은 걸 느끼고 같은 걸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나와 느낌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이 과히 많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뭐 하늘 따위야 어떻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나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말이나 하는 실없는 인간취급을 종종 받으니까요.
하지만 '이야... 하늘 좀 봐라. 멋있지 않냐?' 하는데 '야, 밥 뭐 먹을래? 근데 그 청바지는 얼마 주고 샀어?' 이러믄 정말 꽝입니다.
만나서 밥이나 먹고, 청바지나 사러 다니고, 다이어트 얘기 따위 밖에 할 말이 없으니까요.

차고 맑은 가을 날 아침입니다.
어릴 때 시골집에서는 그저 문만 열면 하늘은 그저 눈앞에 드리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끔 아무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그런 때는 발밑의 삶이 어떤 것이든, 하늘은 온전히 내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산이 있어 오르면 그 산은 내 것 같을 것입니다.
올려다 보면 하늘은 내 하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