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적막하고 적막하구나!!

오애도 2003. 9. 6. 00:01
백화점 문 닫기 직전에 부랴부랴 쌀 한포대를 배달시켰습니다. 이사 와서-오늘이 닷새 째- 딱 한 번 밥을 해먹고 나머지는 근근히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이랑 라면으로 때웠습니다.
어제 잠깐 몸살기가 있다가 가라앉았고, 며칠 째 홀로 곰실곰실 짐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손님들이 찾아오면 새새거리며 앉아있거나 맥주를 마시러 가거나 했습니다.
중간중간 학원엘 나가고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었습니다.
당연히 짐정리는 게으른 며느리 밭고랑만 세는 것처럼 진전이 없습니다.

조용한 집안에서 혼자 부시럭거리며 짐정리를 하는 내 모습을 가끔 그림처럼 떠올려 봅니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장롱 정리를 하고, 부엌의 그릇들과 양념통따위를 한마디 말따위 없이 정리하고 있자면, 나는 더이상 생기발랄한 열 아홉두 아니고, 만사가 만만하기만 했던 스물 두 살 시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아있는 게 마냥 뿌듯하기만 했던 서른 다섯의 나이도 넘어선 이제는 삭아가고 낡아가고 시들어가는 마흔 문턱을 넘어선 그저 기운 빠진 여인네라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도 한참 전에 이사라는 걸 하게 되면 몸 피곤한 걸 능가해 새 기분, 새 상황, 새로운 기대같은 걸로 주위에 퐁퐁 신선한 공기가 떠다녔었는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그렇게 쌀 한포대를 배달시키고, 뒷골목에 가서 3500원 짜리 오징어 덮밥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설렁설렁 악세사리 파는 곳에도 들러보고, 살 생각도 없으면서 옷가게에도 들어가 이것저것 뒤적였습니다.
그러면서 내내 했던 생각,
적막하고 작막하구나!!

수퍼마켓에 들러 치약을 사고, 콩나물을 사고, 부엌에서 쓸 수건을 사고, 수세미와 찬장에 깔 항균시트를 샀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피시방에 들러서 이걸 쓰고 있습니다.

종일 찌푸린 날씨 탓이거나, 아니면 며칠동안 내렸던 비 탓이거나, 그도 아니면 저녁무렵 그렇게 비가 그치고 난 후 불던 쓸쓸한 바람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참을 수 없이 적막한 것은...

이유없이 행복한 가을날이 있듯이 이유없이 적막하기도 한 가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