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뒷모습은 쓸쓸하다

오애도 2003. 8. 15. 08:47
컴퓨터가 바이러스 걸린 모양입니다.
인터넷 연결하고 30분쯤 지나면 뭔 오류가 걸렸습니다. 다시 연결하십시오 어쩌구 하고 뜹니다.
열받아서 컴퓨터 안 키고 버텼습니다.

어제 아침, 어째 칼럼 안 올라오는 게 어디 아픈거 아니냐고, 의정부에서 천사 같은 딸 둘 키우는 친구에게 메일이 왔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새벽 세 시 넘어 들어와 몇시간 못 자고 그 친구 집엘 갔었습니다. 형편없이 잠이 부족한데다 하필 아침에 콧물 줄줄에다 재채기가 나는 바람에 콘택600 먹었다가 열 두시간 가는 약효 때문에 종일 맴맴거렸습니다. 그렇게 보내고 그 친구가 역까지 태워다 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니야... 돌아가는 뒷모습이 영 환자더라...
몸은 커가지고 우째 그리 물른겨...

그 부분에서 괜히 가슴이 뭉클해 왔습니다.
뒷모습이...

그 뒷모습이라는 단어에서 어딘지 잔뜩 축축한 땅과 스산한 공기냄새가 났다면 이상한가요?

예전부터 나는 그 뒷모습에 대한 이상한 쓸쓸함을 앓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울엄니는 어릴적 고향에 갔다가 서울로 오는 길에 버스정류장까지 무거운 보따리를 들어다주셨습니다.
버스가 올 때까지 두 모녀는 별 말없이 서 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내가 그걸 타면 엄니는 뒤돌아 가셨지요.

버스가 부르릉 떠나면 울엄니는 등을 보이며 돌아섰습니다. 그 때 창밖으로 보이는 울엄니의 굽은 등이 서러워서 괜히 눈물이 차올랐었습니다.
아마 어린 딸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울엄니도 그렇게 눈물이 솟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앞모습에 중점을 두며 살아갈 것입니다.
얼굴표정은 물론, 악세서리나 얼굴 화장, 옷이며 신발 같은 것도 대부분 앞이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 모습엔 얼마든지 다른 요소들을 가감해 포장이 가능할 것입니다.

가끔 버스좌석에 앉아 앞사람의 머리카락 헝클어진 뒤통수, 허연 비듬이 떨어져 있는 양복 어깨, 목걸이의 고리부분, 꾸깃거리는 깃 같은 걸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거기 얹혀진 그 사람의 삶을 짐작해 봅니다.
그러나 본인은 결코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렇게 사람의 뒷모습은 늘 무방비상태입니다.
거기엔 위장된 표정도, 감춰진 약점도, 과장된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저 고단한 삶의 모습이나, 푸르게 빛나는 생기-보통 아침 버스 안에서 샐러리맨인 듯 한 남자의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 깃에 양복 깃이 포개져 있을 때-가 말갛게 앉아 있을 뿐입니다.

어쨌거나 사람의 뒷모습엔 한없는 쓸쓸함과 우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내 뒷모습을 짐작해 봅니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때로 그렇게 그저 기운 없이 늙어가는 청승맞은 인간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