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봄기운에 겨워서....

오애도 2003. 4. 7. 02:37
여행이란 그것이 짧던 길던 간에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것을 늘 실감합니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여행은 이미 여행이 아니겠지요.

떠날 때의 설레임을 능가하는 것은 바로 돌아올 때의 안도감일 것입니다.
돌아와서 행복합니다.
어딘가로 다시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겹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정도와 양에 지나쳐 힘에 부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내내 내가 시처럼-??- 읊었던 말이 바로 그 겹다라는 말의 활용형입니다.

서울을 막 벗어나는 버스 안에서부터 그야말로 봄기운에 '겨운' 바깥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야야, 저것들이 뭔가에 잔뜩 겨워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냐. 그야말로 봄에 겨워 하는 것 같다...클클

그런데 그 '겹다'라는 말을 봄기운의 서술어로 쓰면 그 문장에는 뭔지 모를 간지럼, 스멀거림, 나른함, 꼼틀거림, 꼼지락거림, 어른어른함같은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런 기운들을 못 이겨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싹들이 고물 거리며 솟을 것이고, 역시나 잎보다 먼저 꽃들은 꼼틀거리거나 꼼지락거리며 피어나는 것처럼 보여지거든요.
그리하여 그걸 보고 있는 나도 몸 어딘가가 스멀스멀 근질근질해지는 듯 합니다. -좀 심한가-

햇빛 따뜻한 창가에서 바라보았던 나른한 바깥풍경은 역동적인 기운보다는 바로 이런 몽싯거리는 은근한 생명감을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하여 허름한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다음 차를 기다리는 동안 슬슬 둘러봤던 고령읍내나 터미널 바깥 마당에 낮게 누워있는 민들레나 제비꽃 따위를 들여다 보던 우리 둘이 담겨 있던 풍경에도 그 나른함은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어쨋거나 봄은 나른함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그 나른함 속에 부지런한 생명의 몸짓들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게 일상과 삶에 겨울 때 무언가를 뚫고 나가거나 피워내거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겨운'이라는 말이 '삶에' 라는 말과 만나면 왜 이렇게 무겁고 칙칙하고 우중충하고 떨떠름한지...

사람이건 문장이건 짝을 잘 만나야 하는 모양입니다.^^



햇빛 따뜻했던 고령행 시외버스. 휴게소에서 먹던 감자와 케찹 바른 핫도그. 고령읍내의 후줄근한 오락실 앞에서 화려한 웃음과 함께 사진 박던 일. 터미널건물 담벼락에 기대 앉아 들여다 봤던 냉이꽃. 해인사 경판고 앞 마당에서 바라다 봤던 먼 산. 사진 한방 찍어달라고 부탁했다가 엄마닭 따라가는 병아리처럼 쫄래쫄래 관리아저씨 시키는대로 포즈 취하며 사진 박던 일. 거금 이천원이나 주고 산 사발면을 계곡물소리 들으며 먹던 일. 애들처럼 킬킬거리거나 새새거리며 한참을 걸어내려왔던 그 조용하고 긴 산 길. 생각도 않고 있는데 택시처럼 느닷없이 우리 옆에 세워주며 타라고 종용하던 버스기사아저씨.
찻집 '산으로 가는 배'의 감탄스러우리만치 조화롭게 꾸며진 실내. 한없이 한없이 따라주고 마셨던 보이차. 낯익은 얼굴과 새얼굴이 어울워져 마셨던 오~미자술과 대잎술과 인봉술-북한산 꼬냑-. 한 잔 술에 객기로 친구와 되도 않은 설전을 벌이느라 밤을 샌 일. 후추 잔뜩 넣은 김치찌개. 창밖만 보고 있어도 저절로 도가 닦아질 것 같은 쥔장들의 숙소. 심원사 스님에게 들었던 환생과 윤회와 색즉시공 공즉시색론-??-. 그곳에서 먹었던 기막히게 맛좋은 인절미. 산 길 걸어내려오며 봤던 수줍게 피어 있던 보라색 들꽃-이름이 뭐더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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