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영화: 어바웃 슈미트... 소리치지 않지만 크게 들린다.

오애도 2003. 3. 20. 10:04
잭 니컬슨의 어바웃 슈미트를 보고 왔습니다.

역시 그가 주연이었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와 느낌이 쬐끔 비슷합니다. 뿐만아니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처럼 결코 소리치거나 힘주어 말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그 '이보다...'가 사랑이야기가 가지는 따끈함과 달착지근함이 특징이라면 이 영화는 쓸쓸한 인생이야기로써의 썰렁함과 씁쓸함이 특징입니다.

정년퇴임, 아내의 죽음, 딸의 탐탁치 않은 결혼, 그리고 죽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된 아내의 외도-그것도 가장 절친한 친구와-...
슈미트에게 다가온 불행의 무리들입니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인간이다. 딸의 어리석은 결혼조차 막지 못했다. 내 인생은 실패다...
딸의 결혼을 말리러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 읊조리는 대사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그 때 그가 후원했던 아프리카 난민 아이에게 받은 한장의 답장이 그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글을 쓸 줄 몰라 엉성하게 그려진 그 편지에는 슈미트와 아이가 밝은 햇살 아래 서 있었습니다.

세상도 자신도 가장 사랑하는 딸도 변화 시키지 못했지만 오히려 아이로 대변되는 세상이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세상은 슈미트 자신이 준 것이겠지요...

영화는 사실 별로 볼 것이 없습니다. 격렬한 갈등이나 사건의 긴박함이나 이야기의 아기자기함 따위도 없습니다.
사건들은 헐렁하고 느슨하며 진행은 더딥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네 별다를 것 없는 일상들이 흘러가는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는 느릿느릿 노년에 들어선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속엔 빨리 걷고 싶어하는 본능처럼 주인공 슈미트의 삶이 슬픔과 쓸쓸함으로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여지는 화면 속에서 인생의 거부할 수 없는 단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능 다 된 기계 부속품처럼 나이 먹어 시대, 혹은 삶의 뒤쪽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날이 언젠간 나한테도 오겠지요.
그때 내가 물러날 곳이 어디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주는 참으로 커다란 울림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취향의 변화인지 소리치지 않는 영화가 좋습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내 삶도 아프다고 혹은 힘들다고 소리치는 일이 없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족: 영화보면서 내내 부러웠던 것. 슈미트의 아내가 우겨 샀던 트레일러- 일명 캠핑카-
그런 차나 한 대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저 그걸 몰고 한없이 뻗은 길을, 혹은 산과 물과 바위와 초원이 어울워진 길을 끝도 없이 달리고달리고달리고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밤중 아무도 없이 오로지 혼자서...


사족에 뱀발

참고로 제82호 칼럼 '빼어난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입니다.


캐릭터의 놀라움과 그걸 연기한 배우 잭 니콜슨에 경배!

이 어지러운 세상에는 별별 희한한 습관과 성격과 집착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집착과 습관과 성격들은 살면서 점점 견고해지고 강해집니다. 그리고 끝내는 그것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다시는 복구 안될 상처나 회한으로 남거나 그도 아니면

죽을 때까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무덤까지 가지고 가게 되지요.

영화 속에서 사랑에 눈 떠가며 깨지는 남자 주인공의 오랜 습관과 집착들을 보면서 경

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뻔한 이야기-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아마도 배우의 탁월한 연기탓일 겁니다. 결벽증에, 편집적이며, 이기

적이고, 직설적인 인간의 전형같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잭 니콜슨이...

그리고 매력도 있구요. 가끔 얼굴은 전혀 미남이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멋있고 매력

있어지는 배우들이 더러 있는데 잭 니콜슨같은 배우가 아닐까요. 그런 매력은 아마도

자신의 일에 대한 완벽한 몰입-?- 아니면 천재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캐릭터의 소화

능력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이야기는 별 게 아닌데, 정말 좋은 연기와 돈들이지 않고 만든 영화의 힘도 만만찮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배우의 연기가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는

영화.

보고나서 할수 있는 말.

딱 잭 니콜슨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