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마흔 즈음에...
오애도
2002. 12. 30. 08:59
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나이 계산법이 아니고 설날 떡국 한 그릇 먹으면 한 살 먹는 한국식 계산법으로 낼 모레면 마흔입니다.
서른까지는, 그것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거기엔 뭔지 모를 푸르스름한 기운이 많은 것 같았는데, 마흔이란 나이는 그 푸르스름한 기운보다는 누르스름함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푸르스름함과 누르스름함...
짙은 녹색을 띠고 있던 산들이 9월의 시작무렵이 되면 거짓말처럼 그 녹색의 기운은 퇴색해 점점 엷어집니다. 그리고는 계절이 깊어가면서 그것들은 점점 물기가 말라 바삭거리고 누르스름해지거나 불그스름해 지지요.
마흔 언저리의 내 나이가 바로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생의 계절로 본다면 이제 막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계절에서 가을은 뿌려놓은 것들의 결실을 보는 때일 것입니다.
그 계절의 문턱에서 보면 이루어질 것들과 그렇지 않을 것들이 확연히 보여지기도 하겠지요.
어쩌면 그것은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싯귀에서처럼 쭉정이든 알곡이든 지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인것이지요.
나는, 멍청하니 화장실에 앉아 있거나, 빨래를 널거나, 가계부를 쓰거나 하면서 추수할 것들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거두어들이다라는 동사를 써도 좋을 것들이 있는 것인지 좀 막막합니다.
만약 집이나 자동차, 돈 같은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것 외에-당연히 없다!!- 인간에게도-자식, 남편, 친구-거두어들이다라는 동사를 쓸 수 있다면, 결혼해서 아이낳아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될 것이고, 친구조차도 과연 내가 삶에 있어서 알곡이라고 믿을 만큼 진정한 마음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 것인지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슬픈 일이지만 뭐 별로 뿌려놓은 것도 추수할 것도 없는 삶인 듯 합니다.
어쨋거나 마흔입니다.
그래도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지금 씨 뿌리는 일이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요.
마흔의 문턱을 넘으면 뭐 그나름의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어쨋거나 나도 그랬듯이 십대 때나 이십 대 때는 자기가 마흔이나 쉰이 될 거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슬금슬금 어느새 내 코앞에 와 있습니다.
반갑구나. 쓸쓸한 내 나이 마흔!!
서른까지는, 그것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거기엔 뭔지 모를 푸르스름한 기운이 많은 것 같았는데, 마흔이란 나이는 그 푸르스름한 기운보다는 누르스름함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푸르스름함과 누르스름함...
짙은 녹색을 띠고 있던 산들이 9월의 시작무렵이 되면 거짓말처럼 그 녹색의 기운은 퇴색해 점점 엷어집니다. 그리고는 계절이 깊어가면서 그것들은 점점 물기가 말라 바삭거리고 누르스름해지거나 불그스름해 지지요.
마흔 언저리의 내 나이가 바로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생의 계절로 본다면 이제 막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계절에서 가을은 뿌려놓은 것들의 결실을 보는 때일 것입니다.
그 계절의 문턱에서 보면 이루어질 것들과 그렇지 않을 것들이 확연히 보여지기도 하겠지요.
어쩌면 그것은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싯귀에서처럼 쭉정이든 알곡이든 지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인것이지요.
나는, 멍청하니 화장실에 앉아 있거나, 빨래를 널거나, 가계부를 쓰거나 하면서 추수할 것들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거두어들이다라는 동사를 써도 좋을 것들이 있는 것인지 좀 막막합니다.
만약 집이나 자동차, 돈 같은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것 외에-당연히 없다!!- 인간에게도-자식, 남편, 친구-거두어들이다라는 동사를 쓸 수 있다면, 결혼해서 아이낳아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가 안될 것이고, 친구조차도 과연 내가 삶에 있어서 알곡이라고 믿을 만큼 진정한 마음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 것인지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슬픈 일이지만 뭐 별로 뿌려놓은 것도 추수할 것도 없는 삶인 듯 합니다.
어쨋거나 마흔입니다.
그래도 잘 살아봐야겠습니다.
지금 씨 뿌리는 일이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요.
마흔의 문턱을 넘으면 뭐 그나름의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어쨋거나 나도 그랬듯이 십대 때나 이십 대 때는 자기가 마흔이나 쉰이 될 거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슬금슬금 어느새 내 코앞에 와 있습니다.
반갑구나. 쓸쓸한 내 나이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