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문병 다녀오면서... 그리고 그 후...
오애도
2002. 11. 14. 01:39
사촌 오빠가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함게 병원엘 갔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환자는 꽤 씩씩해져서, 손님이 사온 죽도 한사발 다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며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엄마와 나는, 미심쩍기는 했지만 수술이 잘 되었나보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렸지요.
문병 마치고 나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따라나온 올케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경과는 좋은 거지요?
...열었다 그냥 닫았어요...
엄마와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에게는 팔십 다섯을 넘긴 노모가-나에게는 고모님-계십니다.
큰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막내 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신 노모는, 아들이 머잖아 퇴
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 걱정보다 동생-울 아부지- 보러 가겠다고 자꾸 고집을 피우셔서 큰딸이 말리느라 애
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번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팔십 다섯을 넘기신 두 누이는 병든 동생을 보고 말했었습
니다.
우리가 먼저 죽어야지... 순서가 그런 것인디 으째 막내가 먼저 이래서 어쩌는겨...
그럴 때 고모님은 장난으로도 아니,스쳐지나가는 생각으로도 병들어 오년을 넘게 버티는 막
내 동생보다 당신 아들이 더 큰 병을 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퇴원해 다시 예전처럼 일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한 이제 오십
인 오빠와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이제 칠십이신 아버지와 그
둘을 손 아래로, 아들로 두고 있는 머잖아 구십인 고모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불가해한 진
행 상황을 느낍니다.
결국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순서라는, 인간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것
이겠지요.
그리고 인간은 유사이래 많은 것을 창조하고 발전시켰지만 이 설명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는 참으로 무력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한
계인지 모르지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과학과 의학이 더 발달하고 진보한다면 이 불가해한 문제를 풀 수 있게
될까요?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는 가슴에 자식을 묻는 일 따위는 없을까요?
그 가슴 저미는 슬픔을 과학과 의학은 해결 할 수 있을는지...
병원다녀오는 길이 마음 무게 천근, 발걸음 무게 삼천근이었습니다.
2001년 8월 18일 제 53호 칼럼: 문병 다녀오면서...
그리고 몇 시간 전...
그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골 집에 홀로 계신 울 엄니한테 전화가 왔었습니다.
에그.... 고모를 어떡하면 좋으냐... 먼저 돌아가셨어야 하는 것인디...
두어달 전 쯤 그 집에 혼사가 있었고 그때까지도 상황을 모르시던 고모님은 너무나 말라서
맨 바닥에 앉지도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약 먹으면 나을 거라고 굳게 믿고 계시더라며 심란해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동생의 죽음-울 아부지-조차 모르시는 이제 구십을 바라 보시는 고모님...
지금 쯤 고모님은 아셨을까요...
그 가슴 무너지는 상황을 말입니다.
아니면 이번엔 어떤 거짓말로 아들의 죽음을 숨길 수 있을까요?
심란한 한 밤중입니다.
그렇게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은 익숙하게 떠나면서,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한 번도 겪지 않았을 낯선 세계를 열어보입니다
걱정과는 달리 환자는 꽤 씩씩해져서, 손님이 사온 죽도 한사발 다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며
병원 복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엄마와 나는, 미심쩍기는 했지만 수술이 잘 되었나보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렸지요.
문병 마치고 나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따라나온 올케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경과는 좋은 거지요?
...열었다 그냥 닫았어요...
엄마와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에게는 팔십 다섯을 넘긴 노모가-나에게는 고모님-계십니다.
큰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막내 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신 노모는, 아들이 머잖아 퇴
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 걱정보다 동생-울 아부지- 보러 가겠다고 자꾸 고집을 피우셔서 큰딸이 말리느라 애
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번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때, 팔십 다섯을 넘기신 두 누이는 병든 동생을 보고 말했었습
니다.
우리가 먼저 죽어야지... 순서가 그런 것인디 으째 막내가 먼저 이래서 어쩌는겨...
그럴 때 고모님은 장난으로도 아니,스쳐지나가는 생각으로도 병들어 오년을 넘게 버티는 막
내 동생보다 당신 아들이 더 큰 병을 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퇴원해 다시 예전처럼 일 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한 이제 오십
인 오빠와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이제 칠십이신 아버지와 그
둘을 손 아래로, 아들로 두고 있는 머잖아 구십인 고모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불가해한 진
행 상황을 느낍니다.
결국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순서라는, 인간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준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것
이겠지요.
그리고 인간은 유사이래 많은 것을 창조하고 발전시켰지만 이 설명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는 참으로 무력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한
계인지 모르지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과학과 의학이 더 발달하고 진보한다면 이 불가해한 문제를 풀 수 있게
될까요?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는 가슴에 자식을 묻는 일 따위는 없을까요?
그 가슴 저미는 슬픔을 과학과 의학은 해결 할 수 있을는지...
병원다녀오는 길이 마음 무게 천근, 발걸음 무게 삼천근이었습니다.
2001년 8월 18일 제 53호 칼럼: 문병 다녀오면서...
그리고 몇 시간 전...
그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골 집에 홀로 계신 울 엄니한테 전화가 왔었습니다.
에그.... 고모를 어떡하면 좋으냐... 먼저 돌아가셨어야 하는 것인디...
두어달 전 쯤 그 집에 혼사가 있었고 그때까지도 상황을 모르시던 고모님은 너무나 말라서
맨 바닥에 앉지도 못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약 먹으면 나을 거라고 굳게 믿고 계시더라며 심란해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동생의 죽음-울 아부지-조차 모르시는 이제 구십을 바라 보시는 고모님...
지금 쯤 고모님은 아셨을까요...
그 가슴 무너지는 상황을 말입니다.
아니면 이번엔 어떤 거짓말로 아들의 죽음을 숨길 수 있을까요?
심란한 한 밤중입니다.
그렇게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은 익숙하게 떠나면서,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한 번도 겪지 않았을 낯선 세계를 열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