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엄마의 신발
오애도
2002. 6. 21. 00:49
며칠 전 친구와 터미널 지하 상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울엄마 신으면 딱 좋을 신발 한 켤레를 샀습니다.
넓적하고 둥그스름하게 옛날 남자 고무신 모양에다가 망사로 되어 있어서 여름 한 철 신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값도 싸서 단돈 만원이었습니다.
참고로 울엄마는 셋째 며느리가 그 효도신발이라고 하는 것을 늘 대 드립니다. 이웃에 유명회사에 납품하는 신발공장이 있기 때문에 시중가보다 싸게 산다고 하더군요.
어쨋거나 지난번에 오셨을 때 신발을 내 드리며 엄마 이거 여름 한 철 신고 낡으면 버리세요. 했더니 작년에 산 신발도 아직 괜찮은디 뭘 또 샀냐 하셨습니다.
얼만디?
만원...
어째 사는 신발마다 만원이여?
그러고 보니 삼 년 째 만 원짜리 신발을 사드렸습니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 있는 신발가게에서입니다.
서울 다니러 오셨다가 돌아갈 때마다 지하상가를 지나게 되고 그때마다 그곳에서 엄마 이거 여름에 신으면 편하겠네... 하고 충동적으로 샀던 것이지요.
어차피 여름 신발이라는 것은, 비가와도 철컥철컥 젖게 신어도 상관없을 만큼 편하게 막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엄마 말씀에 좀 머쓱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 신발이 만 원짜리에 불과하다고 섭섭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년엔 이 만원짜리 사 드릴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나는 잔뜩 오만원 넘는 신발이 있습니다. 운동화도 오만원 넘고, 등산화도 오만원이 넘으며, 사실 이십만원 넘는 신발도 한 켤레 가지고 있습니다.
백화점 같은델 어슬렁거리다 십만원 넘는 신발을 삼만 구천원이나 오만 구천원하면 쓱 사들고 와서 싸게 샀다고 즐거워합니다.
체격에 안 어울리게 걷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신발은 우선 편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신발이라도 걷는데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신발장 속에 들어가 몇년이고, 몇년이고, 몇년이고 주인을 싣고 다니는 영광을 누려보지 못한 채 지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신발들이 꽤 여러 켤레 있습니다. 그것들 역시 꿰어 보지 못하고 들어가는 스웨터만큼이나 내 속을 쓰리게 합니다.
어쨋거나 사는 것마다 만원이여 하는 소리에, 나는 혹시 울엄마는 아무거나 신어도 된다고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뭐 물론 그것이 단 돈 만원이라서 즉 싸기 때문에 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 엄마였다면 당신 것은 오만원 넘는 신발 사면서 자식에게는 만원짜리 신발 따위를 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년 가볍게 신고 낡으면 버리세요하는 건방따위도 없을 것이구요.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반드시 내어머니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것입니다.
자, 이것이 자식과 엄마사이에 있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심연일 것입니다.
언젠가 스스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보면 알게 될 테지만 지금은 사실 짐작조차 안됩니다.
그리고 참으로 쓸쓸한 것은,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일 낳고 그리하여 엄마된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되도 그런 엄마의 마음은 절대로 엄마에게 되돌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 심연같은 사랑은 엄마한테 가기보다는 내 자식 내 새끼한테 갈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자식, 내새끼들 역시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구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하나도 그른 것 없는 이 해묵은 격언은 그리하여 쓸쓸합니다.
내가 다음 해에는 오 만원 넘는 신발을 사 드린다해도 그 쓸쓸함은 덜어지지 않겠지요.
넓적하고 둥그스름하게 옛날 남자 고무신 모양에다가 망사로 되어 있어서 여름 한 철 신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값도 싸서 단돈 만원이었습니다.
참고로 울엄마는 셋째 며느리가 그 효도신발이라고 하는 것을 늘 대 드립니다. 이웃에 유명회사에 납품하는 신발공장이 있기 때문에 시중가보다 싸게 산다고 하더군요.
어쨋거나 지난번에 오셨을 때 신발을 내 드리며 엄마 이거 여름 한 철 신고 낡으면 버리세요. 했더니 작년에 산 신발도 아직 괜찮은디 뭘 또 샀냐 하셨습니다.
얼만디?
만원...
어째 사는 신발마다 만원이여?
그러고 보니 삼 년 째 만 원짜리 신발을 사드렸습니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 있는 신발가게에서입니다.
서울 다니러 오셨다가 돌아갈 때마다 지하상가를 지나게 되고 그때마다 그곳에서 엄마 이거 여름에 신으면 편하겠네... 하고 충동적으로 샀던 것이지요.
어차피 여름 신발이라는 것은, 비가와도 철컥철컥 젖게 신어도 상관없을 만큼 편하게 막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엄마 말씀에 좀 머쓱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 신발이 만 원짜리에 불과하다고 섭섭해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년엔 이 만원짜리 사 드릴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나는 잔뜩 오만원 넘는 신발이 있습니다. 운동화도 오만원 넘고, 등산화도 오만원이 넘으며, 사실 이십만원 넘는 신발도 한 켤레 가지고 있습니다.
백화점 같은델 어슬렁거리다 십만원 넘는 신발을 삼만 구천원이나 오만 구천원하면 쓱 사들고 와서 싸게 샀다고 즐거워합니다.
체격에 안 어울리게 걷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신발은 우선 편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신발이라도 걷는데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신발장 속에 들어가 몇년이고, 몇년이고, 몇년이고 주인을 싣고 다니는 영광을 누려보지 못한 채 지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신발들이 꽤 여러 켤레 있습니다. 그것들 역시 꿰어 보지 못하고 들어가는 스웨터만큼이나 내 속을 쓰리게 합니다.
어쨋거나 사는 것마다 만원이여 하는 소리에, 나는 혹시 울엄마는 아무거나 신어도 된다고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뭐 물론 그것이 단 돈 만원이라서 즉 싸기 때문에 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 엄마였다면 당신 것은 오만원 넘는 신발 사면서 자식에게는 만원짜리 신발 따위를 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년 가볍게 신고 낡으면 버리세요하는 건방따위도 없을 것이구요.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반드시 내어머니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것입니다.
자, 이것이 자식과 엄마사이에 있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심연일 것입니다.
언젠가 스스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보면 알게 될 테지만 지금은 사실 짐작조차 안됩니다.
그리고 참으로 쓸쓸한 것은,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일 낳고 그리하여 엄마된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되도 그런 엄마의 마음은 절대로 엄마에게 되돌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 심연같은 사랑은 엄마한테 가기보다는 내 자식 내 새끼한테 갈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자식, 내새끼들 역시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구요.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하나도 그른 것 없는 이 해묵은 격언은 그리하여 쓸쓸합니다.
내가 다음 해에는 오 만원 넘는 신발을 사 드린다해도 그 쓸쓸함은 덜어지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