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새벽 세 시는 무서버!!

오애도 2002. 5. 22. 10:20
참으로 조용한 새벽입니다.
초저녁에-열 두시-에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세 시가 좀 넘어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찌어찌하다 보면 어영부영 세 시 넘기기가 일쑤였는데 요즈음은 그런대로 잠의 사이클이 제대로 돌아가 일찍 자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너무 일찍 깨어나 어슬렁거리는 일이 잦아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시 넘어 자고 아홉시에 일어나는 것이나, 열 두시에 자고 세 시 넘어 일어나는 것이나 쌤쌤이 되 버린 것입니다. 둘러치나 메치나......ㅠㅠ

올해 목적이 잠을 좀 많이, 잘 자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잘 안됩니다.

방안은 적막하게 가득 새벽의 공기를 품고 있습니다.
만약 그동안의 습관처럼 이 시간까지 깨어 있던 채로 있었다면 방안은 분명 한밤중 공기를 잔뜩 품고 있었겠지요.

좀 전에 쓰레기차가 다녀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네시를 넘었다는 뜻이고, 이렇게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는 늘 듣는 소리입니다.
만약 잠을 자지 않았다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제 자야겠는걸', 하고 침대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잠을 자고 깨어 있으면 이젠 하루의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지요?
같은 소리가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말입니다.

창문을 열어봅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조용히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는 듯 합니다.
이렇게 새벽에 깨어나 멍하니 일어나 앉으면 갑자기 시간의 흐름은 두드러지게 그 속도감을 드러냅니다.
그 속에서 헉헉대며 시간에 발 맞추어 가는 내 발걸음의 무게도 느껴집니다.
늘 시간은 내 앞을 달리고 있는 것 같고, 나는 그렇게 시간의 등만 보며 달리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시간의 등만 보고 있다가 삶을 접는 것은 아닌지......

이런 연유로 나는 새벽 세시쯤에 깨어나는 것이 두렵고 싫습니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의 운명은, 싫다고 하면 더 들러붙는 경향이 있는지라 앞으로는 이 우울한 세 시를 사랑해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 그럼 분명 나 싫다고 그 새벽의 허무란 놈은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들은 부옇게 창문이 밝아 오면 퇴색해가는 어둠처럼 조금씩 엷어집니다.
그것은 마치 어렸을 적 시골 집 마당에 있던 뒷간에 대한 생각과 비슷합니다.
한 밤중에 그 어두컴컴한 뒷간은 얼마나 무섭던지요. 거기엔 온갖 으스스한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흰 소복에 검은머리 풀어헤친 처녀귀신, 걀걀거리며 걸어나온다는 키 작은 달걀귀신, 살은 하나 없이 그저 오래된 뼈다귀 팔과 다리로 덜거덕거리면 걷는 해골 바가지... 그런 것들이 추운 겨울 밤, 엉덩이 내리고 앉아 있으면 이놈하고 뒷덜미를 챌 것 같은 두려움에 몇 번씩 뒤돌아보았었지요.
하지만 날이 새고 한낮이 되면 대체 밤의 그런 풍경들은 어딜 갔는지, 뒷간은 그저 냄새나는 뒷간에 불과해집니다.

무서운 세시-??-는 이제 지나고 다섯 시가 다 되어갑니다.
다시 누워 자기도, 그렇다고 일어나 아침을 짓거나 청소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입니다.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그리고는 어제까지 읽던 이슬람 책이나 마저 읽어 치워야겠습니다.
그러다 졸리면?
머리나 벅벅 긁으며 다시 자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