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5월이로다
매일매일의 시간이 아깝고 아쉬워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시간은 맛있는 음식 줄어드는 것처럼 아쉽고 아쉽습니다.
감기 몸살 후유증-?-은 얕게 오래 가서 근 보름동안은 문자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영어 공부는 귀로 듣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주 깨끗하게 맑지 않았는데 이게 영어 단어 세 개를 외워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하하
다행이 엊그제부터 머리가 맑게 개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어버이 날을 맞이하여 엄니 계신 청주의 납골당엘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이 계셔서 카네이션 네 송이를 샀습니다.
우선 엄니, 아부지 계신 방엘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울엄니 아부지가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네... 내가 방 번호를 잘못 알았나...-어느 순간부터 그런 숫자가 안 외워짐 ㅋ- 그래서 할 수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방을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도 못 찾...
결국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들어갔더니 그제야 할머니 할아버지 발견!! 그리고 다시 엄니 아부지 계신 곳으로 왔던 어머나!! 엄니 아부지가 보입니다. 분명 처음에 들어갔던 그 방입니다.
흠... 뭐 생각해보면 아무리 즈이 부모라도 예의상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먼저 뵙는 게 예의라는 걸 깨닫게 하려고 그랬는지 모릅니다. 허허
나는 신비주의를 꽤 신봉하는 인간인지라 그 헤맴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잠시 고민하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먼저 갔었다는 것.
사실 그곳엘 갈 때마다 느낌이 굉장히 다릅니다. 4년전 아프기 전 봄에 갔을 때-그때는 엄니만 계셨음-, 나는 엄니 앞에서 꺽꺽거리며 울다 왔던 기억이 납니다. 왜 느닷없이 그렇게 서럽고 서럽게 폭풍처럼 눈물이 쏟아졌는지는 그해 가을 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집중치료 끝나고 다음 해 혼자 찾아갔을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때 눈물은 내가 흘린 게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서 내 어머니가 울고 계셨던 거였지요. 진단 받고 입원한 첫날 혼자 누워서 맨 처음 떠올랐던 생각이 '엄마'가 없어서 서러웠고 '엄니'가 안 계셔서 다행이네...였습니다. 한달 가까이 입원하고 나머지 공고 항암을 하는 4개월 동안 내가 어떻게 혼자 싸워야 하는 지를 엄니는 알고 계셨을 겁니다. 나는 씩씩했지만 엄니는 분명 나이 먹어 혼자 사는 딸이 애처러웠겠지요. 1년이 지나고 다시 엄니 아부지 앞에 섰을 때는 마음이 햇살처럼 밝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깨달았지요. 나는 쉽게 나을 것이고 크게 별일도 없겠구나...
그 이후로 혼자 찾아갈 때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 엄니 아부지가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잘 살고 있구나... 잘 살아라...
그럼 나는 소리 내어 말합니다.
엄니 아부지 고마워유. 나중에 저 데려가실 때 너무 힘들지 않게 해 주세유...
그리고 나는 내 믿음이 늘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 희망도 그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찬란한!! 5월입니다.
내가 '나'인 게 감사한 시간들입니다.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인 게 감사하고 그 시간의 가치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리게 돼서 또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