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시간에...
40일 넘게 불면의 날들이다.
피로한 날도 있고 분명 피로할 일이 없는 날도 있는데 잠은 늘 그 타령이 그 타령이다.
평균 잠 자는 시간은 인심 써서 길게 쳐 줘도 네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그것도 20분이나 한 시간 단위로 깼다가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 한 잔 마시는 커피를 안 마시기도 하고, 혹시 몸을 지나치게 활성화시키는가 싶어 종합비타민도 굶어보고 한밤중에 꿀도 두어 숟갈 먹어보기도 하고-지나치게 탄수화물이 부족해도 잠이 안 옴- 냉장고에 밥 반 공기를 뜨거운 물 부어 후룩거리 먹기도 했다.
그런데도 몸은 툭!! 신경을 끄지 않는다.
요 며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정말 별일 없는 날들이었다. 크게 신경쓰는 일도 없고 걱정되는 일도 없었다.
내 생애 머리만 땅에 대면 잠이 오는 기적은 한번도 없었던 듯하다.
어쨌거나...
그렇다고 피로에 지쳐 낮에 갤갤대거나 빌빌대는 일도 없다. 낮잠을 자는 경우도 없고 꾸벅꾸벅 조는 일도 없다.
그러면서 서서히 몸은 알아서 이런저런 증세를 드러낸다.
감기도 그 중 하나지만 감기 끝무렵부터 이상하게 머릿가죽이 아프기 시작했다. 오른쪽 머리만 손을 대면 불에 댄듯 찌릿찌릿 아팠다. 가끔 푹 찌르는 느낌이 이틀 정도 있었다가 사라졌고 나중엔 외상 없이 귓바퀴까지 아파왔다. 다행이 머릿속이 아픈 건 아니어서 병원엔 안 갔다.
30년 전 쯤에도 비슷한 증세가 있었다. 분명 아무런 외상도 없는데 오른쪽 얼굴을 비롯해 머리까지 아파서 심란해 하다가-머리니까 뇌신경에 문제가 생긴 건가 해서리...- 아는 분이 한의원엘 가보자고 해서 갔었다. 문진표를 작성하다보니 이런!! 당최 문제가 하나도 없는 100점 짜리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한의사가 대체 여긴 왜 왔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오른쪽 얼굴하고 머릿가죽이 찌릿찌릿 아프고 통증이 있다고 했더니 별일 아니라고 해서 생뚱맞게 생전 처음 보약을 지어 와서 닷새 쯤 먹다가 그만뒀다. 그렇게 며칠 아프다가 괜찮아졌는데 한달 쯤 지난 후에 원인을 알게 됐다. 오른쪽 어금니가 아파서 치과에 갔더니 충치가 신경까지 퍼져서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치통도 없이 그렇게 신경이 망가지느라 신경이 뻗친 부분이 아팠던 것이다.
이번엔 어금니 두 개가 없으니 치아 신경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니면 사랑니인가...
대신 감기 초기에 편도가 심하게 아팠었고 다 나았는데도 오른쪽 편도 부분이 침 삼킬 때 아주 편안하진 않다. 아마 축적된 피로 탓에 신경 어느 부분에 염증이 생겼고 그것이 신경을 따라 통증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잠을 자알 잤더라면 사흘 정도로 끝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넘겼는데 생각보다 길게 간다.
예전에도 피곤하면 오른쪽 턱밑 임파선에 멍울이 생기거나 왼쪽 코 밑에 콩알만한 멍울이 잡히곤 했었다. 그럴 땐 종합비타민 며칠 잘 먹어주면 금방 가라앉았었다.
사실 코밑 멍울이 안 생긴지는 오래 됐는데 암치료 끝내고는 그런 얕은 염증 반응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항암제의 무차별 공격으로 내 몸의 많은 균들이 치명적으로 손상을 입은 탓일 것이다.
대체로 어떤 질병이나 증상이라는 것은 결코 몸 밖의 문제가 아니다. 내 몸에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이 외부 요인들에 의해 골이 나서 들고 일어나면 생기는 것이다. 너무 강하게 들고 일어나는 것들이 암세포이고 저런 소소한 증세들은, 헤이 주인장, 조심 좀 해 주시게~ 하는 싸인일 것이다.
어제 낮에 혹시 대상포진 같은 게 아닐까 해서 그거 최근에 앓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별 공통점은 없었고 그저 병원 가보라는 얘기만 들었다. ㅋㅋ.
면역수치를 제로까지 만들어버리는 것이 1차 목표인 혈액암 치료 중에도 안 걸렸었는데 대상포진이면 사실 웃기는 일일 것이다.
그려 내일은 병원 가봐야지... 했더니 기분 탓인지 훨씬 나아진 것 같다. 허허.
어디 조금 아프면 병원으로 쪼르르... 혹은 후다닥 뛰어가는 일이 왜 안되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몸을 자알 지식을 갖고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는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스스로 찾은 답이 맞으면 다행이고 틀리면 또 후다닥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또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으로 대변되는 사람 몸의 놀라우리만치 강인한 생존력과 회복력을 믿어주면 몸은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어쨌거나 어떤 증세의 치료나 치유에 있어서 약보다 세 배쯤 중요한 것은 자알 자는 것... 이리라.
하여 자알 자고 싶다. ㅠㅠ
오늘도 다섯 시를 넘기겠군. L 트립토판도 새로 먹었는디 효과가 1도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