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살아가는 즐거움, 살아 있는 기쁨

오애도 2020. 5. 17. 14:22

어제 낮에 늘 똘똘 뭉쳐 다니는 제자 셋이 다녀갔습니다.

작년 연말쯤 넷이 다녀가고 코로나 군만 아니었으면 두어번 더 찾아왔을 제자들입니다.

중간중간, 잘 계시죠?  선생님 댁에 가고 싶은데 코로나 땜에 못 가요... 하는 문자메세지가 날라 왔었습니다.

지났지만 스승의 날 언저리라고 카네이션 꽂힌 수병도 들고 왔습니다. 선생 노릇 한지가 꽤 오래된 듯하여 문득 더 반가웠던 카네이션...


지난 연말 나랑 비슷한 시기에 한달간 유럽에 갔었던 제자가 내가 좋아한다고  냉장고 자석을 들고 와 우르르 꺼내 놨습니다. 묵직하고 큼직하고 유니크한 냉장고 자석들...


한명은 이제 막 유치원 교사가 되어 월급을 탔다고, 오늘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합니다.

 나도 유치원생 하고 놀고 있으니 공통의 얘기가 아주 많았고요.

한 명은 이제 막 성우가 되고 싶어 성우학원에 다닌다고 하여 한때 성우가 되고 싶어 몇년 동안 독학으로-??- 성우시험 공부를 했던 내 경험을 토대로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올 가을에 나란히 성우 시험 보러가볼까 뭐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kbs성우 공채에 연령 제한이 없어져서리 ... ㅋㅋ

오래전 스물 다섯 무렵  시험 보러 갔을 때 KBS 옥상에서-??- 소집 기억이 선명합니다.

한 명은 철학도니까 내가 또 한때 철학자를 꿈꾸며 청하출판사 판 니체 전집을 사 모을 만큼 그쪽에 힘주어 몰입했었으니 또 할말이 있고 말을 들어주는 데도 무난합니다.

생각해 보니 나란 인간은 어떤 화제로 이야기하든 별로 낯설거나 생경한 분야가 별로 없는데 아마 내가 활동하는 영역이나 만나는 사람들의 영역이 매우 좁아서 그렇겠지요.

그래도 잘난체를 하자면 박학다식인 거고 아니면 나란 인간이 좀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터라 그쪽으로 짐작건데 그냥 내 주위의 세상이 내가 아는 것만 말할 수 있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가끔 예전에 수업 중에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뭐예요?

그럼 나는 대답합니다.

나는 내가 뭘, 얼마큼 아는지 모르고 또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단다.

하여 모르는 것은 무지무지무지 많고 책을 읽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집니다. ㅠㅠ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었던 닥터 파우스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은 느낌. ㅋㅋ


어쨌거나 나는 오랜만에 떡볶이를 해 주고 제자는 저녁으로 피자와 치킨을 주문해 먹고 한참을 있다가 열 시 넘어 돌아갔습니다. 죽은 고양이 똘똘이를 위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이 착하고 선량한 청년-?? 여자들이다-들이 하필 내 제자인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주 오래 전에도 다른 제자한테 들은 얘기였는데 이번에도,

선생님은 정말 우그웨이 같으세요. ㅋㅋ


쿵푸 팬더에 나오는 큰 스승 거북이 우그웨이...


 어릴 때 나는 달리기를 하도 못해서 별명이 거북이였습니다. 하하

 사실 생긴 건 분명 팬더인 포와 엄청 닮았는디...


삶에 대한 빛나는 대사들로 가득했던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시리즈...




그리고는, 나는 이제 갈 때가 되었어...

복숭아꽃과 함께 사라지는 아름다운 장면.



나이 먹어가는 것과 내가 누군가의 선생이었다는 것이 좋은 것은 진심을 다해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잘난 척이라는 비난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

나일 먹거나 명색이 선생인 자가 모르는 게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요.

누가 뭐라든 지식을 얻는 것은 어려워도 지혜를 터득하는 건 조금 더 쉬워지는 게 나이 먹는 자의 특권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여 나를 '선생님'으로 알아주는 착한 제자들이 고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