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꿈꾼다

오애도 2019. 12. 15. 14:02

어릴 때부터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는 꿈을 꾸었다.

창 밖으로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져 있고 꽝광 얼어붙은 바깥 날씨를 열차의 창가에 앉아 끝도 없이 끝도 없이 바라보며 화난 사람처럼 상념에 빠져 있는 것을 나는 종종 상상했다.

누구 하나 아는 사람도 없는 열차 안은 바깥 날씨에 비하면 따뜻할 것이고 잠 없는 나는 몇날 며칠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피아 로렌 주연의 명작 영화 '해바라기'가 구 소련에서 촬영됐다는 이유로 극장에서 한동안 개봉이 불가했을 정도로 첨예한 냉전체제를 몸소-??-겪었던 나에게 그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꿈은 사실 대단히 요원한 것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 본 동서진영의 대결구도를 소재로 한 스파이 영화 같은 걸 봐도 어딘가 그쪽 동네에 잘못 들어가면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선입견은 역시 무섭다-  그 꿈은 그저 꿈이거나 스무 살 남짓의 치기에 불과하겠지... 했었다.

 그 후 소련은 해체되고 죽의 장막이 열리며 중공이 아닌 중국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역사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에 대해 함부로 예측하거나 섣부른 단정 따위는 결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 겨울에 나는 열흘 남짓의 휴가-??-가 느닷없이 주어졌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어디 여행이라도 가야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사실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였다. 허허.

그리고는 여기저기 검색에 검색을 했지만 결론은 이번엔 패스...

시간도 어중간하게 안 맞았고 무엇보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듯 싶었다.

결국 깨끗이 포기하고 대신 깃발 꽂기 여행이라 불리는 동유럽 패키지를 불쑥 예약하고 말았다. 하하하.

뭐 시베리아만큼은 아니겠지만 동유럽의 겨울 날씨 체감도 괜찮겠지 싶었다. 아직은 젊어서-뭐래??-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그래도 낫다. 물론 이 생각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ㅋㅋ


하여 아직 보름이나 남은 여행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는 중. 사실 여행은 여행 중일때보다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설레고 즐거운 법이다.

오랜만에 여권을 꺼내보니 내년 9월이면 만기다. 미국 갈 때 만들었으니까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미국여행이 벌써 9년 전이라니...

 그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매일매일을 어찌어찌 견디거나 살아왔는데 10년을 묶어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롤코를 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것이 변했고 많은 것을 접었으며 많은 것이 해결되고 많은 것이 새로워진...

이만하면 잘 지내왔다고... 잘 살았다고 내가 '나'에게 토닥토닥...하며 주는 상이다.


어쨌든 이번 여행도 혼.자.서. 가게 되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서유럽 패키지도 혼자서 갔었는데 그때 돌아와서 한 생각이 한 달이나 두 달 쯤 배낭여행으로 다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천을 못했다.

앞으로 운전 면허를 따고 외국어를 좀 더 공부해서 배낭여행 아닌 자유여행으로 한 5년 후 쯤 시도해 봐야지. 하하하.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타고 바이칼 호수도 가고... 뭐 꿈 꾸는 것에 돈드는 것도 아니니 야무지게 꾸어 보자 하면서도 문득  대체 마음의 저 밑바닥부터 밀려오는 근원적인 허무는 어찌된 걸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