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메스처럼 빛났던 휴머니즘. <용팔이>일 수밖에 없는...

오애도 2019. 4. 2. 08:17


몇년 전에 특별한 목적으로 썼던 드라마 <용팔이> 리뷰...

익명 사이트에 올렸다가 다시 퍼 옴. 지난 글들이 불쑥 말을 걸어올 때가 있어서리...

스스로 을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소위 <갑>에게 눈 흘기거나 침 흘리지 않는 나는 그러므로 갑인가!!! 갑일지도... 결국 갑 따위... 하하.



용팔이로 불리는 태현은 자신의 병원에서 음모에 의해 잠들어 있는 재벌 상속녀 여진을 만나 그녀가 속한 소위 말하는 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진 자들의 더 가지려는 음모와 배신과 복수 같은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보게 되지요고단하고 피로한 삶 속에서 갑이 되고 싶었던 태현은 여진을 구하고 비로소 갑이 되지만 마지막엔 스스로 그 세계를 걸어 나옵니다.

 흔히 드라마의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일 경우 그 주인공의 매력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 드라마 전체를 지배해야 합니다그러한 주인공의 매력은 이야기의 힘을 강력하게 해 줄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드라마 전체가 갖고 있는 이런저런 약점까지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보게 합니다.

드라마 용팔이는 다양한 장르의 옷을 입은 채어느 땐 지나치게 급박하고 때로는 과하게 느슨하거나 더러는 생뚱맞은 색깔의 변화를 보여주는 바람에 시청자를 어리둥절하게 했지만 용팔이로 불리는 주인공 태현의 질병에 가까운 휴머니즘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합니다.

젊은 의사 태현은 아픈 동생을 위해 뻔뻔하게 돈을 밝히고 불법적인 조폭왕진 같은 일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로서 아픈 사람과 생명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습니다동생 말고도 무연고 환자로부터 자신을 죽이려했던 한도준까지... 아니 마음과 몸 모두를 치료한 여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그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갑이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그리고 오늘 날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갑이 되고 싶어 합니다소위 갑질이 사회에서 중요한 쟁점이 됐고 비인간적인 갑질이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가 갑이 됐을 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은 소위 갑들만의 욕망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여진의 말대로 누군가의 갑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을이라면 누군가의 을은 또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갑입니다하지만 더 많이 가지려 하면 할수록 영원히 모두는 을인 것이지요하여 이 드라마는 겉으로는 갑으로 보이지만 그 내면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비루한 을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갑이 되고 싶은 비루한 을이라고 믿는 태현을여진은 깊이 사랑하지만 그녀가 전형적인 갑의 속성을 버리지 않고 잔인한 복수의 칼날을 휘둘렀던 것은 그녀가 속한 악어 들의 세계이자 갑의 세계의 속성이지 그녀 개인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하여 그 비인간적인 세계 속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곳을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힘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한때 간절히 바랐던 세계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태현의 선택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태현의 다른 이름인 용팔이인 이유입니다.

을의 정의가 황금의 무게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고양된 정신이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예의와 사랑에 의해서라면 어쩌면 용팔이야말로 진정한 갑인지도 모릅니다.


 드라마는 정교하게 재구성된 현실을 통해 사람들에게 옳거나 가치 있는 것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용팔이는 주인공 태현을 통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간이란 어떤 인간이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비록 날것을 씹는 듯한 어석거림과 다져지지 않은 길을 달리는 것 같은 덜그럭거림도 있었지만...

 그리고 여진과 태현의 갈등이 그들이 가진 황금의 크기에서 오는 현대판 신분 차이 때문이 아닌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의 차이로 인한 것이고 그것을 뻔한 시각과 식상한 발상으로 첨예한 대립의 구도로 잡아 싸우게 하지 않습니다대신 태현은여진을 그 세계에서 구하기 위해 아프게 이해하고 스스로 물러서며 조용히 기다려줍니다그러면서 오히려 서로에게 다가가게 만듦으로써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각자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매끈하진 않지만 그래도 순진한 결론을 수줍게 보여줍니다,,,클 멜로드라마라는 형식에 어울리지 않게...

이 험한 세상에서 그렇게 용팔이는 탐욕이나 이기심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마음속에 청진기를 들이댔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