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지만 유쾌한...
정말 오랜만에 산 종이 책...
한동안 필요한 책은 e북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필요'에 의해 사거나 빌리거나 하게 된다. 이전의 독서는 '필요'가 아니라 흥미와 그나름 정신적 '욕구'에 의해서 였는데 물리적 '필요'에 의한 책이 아닌 것들은 갖고 있는 책을 읽는 게 훨씬 즐겁다. 애초에 '필요'에 의해 산 책이 아니었으니까...
연말에 사놓고 그동안 정말 바빠서 달팽이 걸음으로 읽는 중.
초장부터 꽤 신랄하고 적나라한 비판-??-이 묻은 문체라서 성향상 매끄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는 않는다.
시간적 혹은 시대적인 괴리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속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이런 류-??-의 책에서 변하지 않고 빛을 발한다.
나야 물론 자연도 예찬하고 문명도 예찬하며 감사하게 사는 인간이다.
문명의 비인간성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문명조차 인간의 욕망에 의해 구축된 것이고 그 속에서 일세기도 못 살고 가면서도 아등바등 사는 인간의 삶조차 참된 가치로 봐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뭐래...-
자연이라고 해서 비인간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며 자연에서 인간은 야수성이 훨씬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또 뭐라는 겨?-
뭐 후딱, 혹은 휙!! 읽어지는 책은 아닌데 불쑥 나도 고즈넉한 시골의 호숫가는 그렇고 시냇가에 집 짓고 2년 정도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물론 이 첨단 문명의 시대에 완벽하게 문명에서 벗어나 오롯이 풀과 나무와 벌레나 짐승이나 물고기와 눈 맞추며 사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ㅋ
아직도 늘, 언제나, 항상... 문구 코너에 들르면 사고 싶은 것들... 필기구, 질 좋은 노트, 메모지, 쓰지도 않을 거면서 편지지 따위에 마음이 끌린다.
집에서 그나마 줄기차게 펜을 쓰게 되는 경우가 두부, 당면, 돼지고기, 차... 뭐 이런 시장에서 사올 것들의 메모이거나 짤막하게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 기록하는 것 외엔 없어서 사 놓은 펜 닳도록 쓰는 일도 요원한데 말이다.
결국, 저렇게 필기감 좋은 볼펜 두 자루를 사고 멀티펜 리필 두 자루도 샀는데 뜯고 보니 단일펜 리필 심... 이런!!
펜도 샀으니 영어단어 외우기나 한자 쓰기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ㅋ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정말 또 모처럼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었다.
뮤지컬 덕후인 제자가 먼젓번에 와서 선생님 뮤지컬 함께 보실래요? 하면서 그 자리에서 예매를 했다.
빨간머리 앤...
이미 알려져 있는 그래도 긴 이야기를 발랄하고 밀도 있게 잘 만들었고 관객들도 꽤 많았다.
열 다섯 중학교 2학년에 만나서 이젠 어엿한 대학생이 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선생인 나에게 뮤지컬도 보여 줄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했다. 흐뭇...
그리고 2년전 청소년 연극축제에 참가했던 마지막 잎새가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면서 당시 내가 썼던 리뷰를 팜플렛에 싣겠다고 전화가 왔었다.
연극 보러 간 김에 팜플렛 한 권 사야지... 들렀다가 제자랑 다시 보게 됐다.
선명하게 빛나는 평론가... ^^;; 라니...
끝나고 학림다방에 들러 차와 케이크-가 다 팔려서 파르페를 시켜놓고 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12월 31일 제자와...
에약할 때 내가 옆에서,
이야, 그렇게 중요한 날을 나와 보내서 되겠냐... 했더니 왜요? 저는 정말 좋아요... 했던 착한 제자.
내가 개론 읽은 철학도라고 할 때마다, 선생님 요즘엔 개론 안 봐요... 한다. 어찌 개론을 개론으로 듣는 거냐, 입문이라는 의미의 대유법 아니겠냐. 인문학도가 뭐 그러냐... 킬킬. 했었다.
제자들과 얘기하면 편협하기는 하지만 젊은 시각의 첨예함과 풋풋한 향내가 함께 맡아져서 늙어가고 말랑해져 가는-??- 나는 저절로 생기가 일어난다.
참으로 고마운 제자들이다.
그리고 새해...
사실 12월 한달 동안은 많이 바빴다. 해야할 일이거나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고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고 -매주 한 번씩 동침자가 생겼었다. 4주 동안...-
새해 첫날에도 동침자... 다음 날엔 멀리 해외에서 날아 온 제자의 방문, 어제는 아르바이트...오늘은 모처럼 아무 일도 없는 날...이다.
해야만 할 일은 거의 없지만 하고 싶은 일들은 주렁주렁 많다.
그래도 잊지 않고 '나'를 생각해 주고 필요하게 생각해 주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
감사합니다.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