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그래서 축복같은 날들...

오애도 2018. 2. 25. 12:07

생각해보니 정말 바빴던 일주일...

사촌 동생과 2박3일 지내고 화요일 병원 가는 날이라서 함께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고, 수요일 하루 쉬고 목요일은 제자가 찾아와 밤 열두 시까지 이바구를 하고 돌아갔다.

금요일은 시내 나가 친구랑 밥 먹고 차 마시고 이바구하고 또 밥먹고 차 마시고 이바구 하고 집에 돌아오니 열 한시 가까이... 토요일 어제는 흔들려 넘어진 세탁기 정리대를 온 힘을 다해 다시 세웠는데 아직도 꺼떡꺼떡... 또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ㅠㅠ. 그리고는  한참 전에 사 둔 시래기를 정성스럽게 삶아 저녁에 시래기 된장지짐을 해 먹고 다시 사촌 언니가 와서 열두 시 가까이까지 이바구...

 한숨 잘 자고 세벽 세 시 쯤 깼는데 온몸이 욱신욱신... 하나 남은 타이레놀 삼키고 자알 잤다.

이상하게 세탁기 정리대만 힘써서 만지면 열 나고 힘들다. 그게 온힘을 다해 천장과 바닥에 쿵!!! 하고 압착해야 하는데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아무리 힘을 줘도 확고하게 부착이 되지 않는다.  처음 설치할 때는 항암 주사 맞고 수치 최저치였을 때였는데 그날 밤 열이 좀 났었다. 그때 문득 생각한 것이 이럴 때 남편이건 아들이건 힘센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뭐 그까짓 세탁기 정리대 세우자고 결혼을 할 수도 없고... ㅋㅋㅋㅋ

사촌 언니가 듣더니 나같으면 정리대 같은 거 없이 산다... 했다. 하하하.

 그래도 그런 거 스스로 설치해 놓고 유용하게 쓸 때의 소소한 즐거움은 일종의 보람이다.

지금까지 이 나이 먹도록 혼자서 자알 살아온 내가 자랑스러운 것처럼... ㅋㅋ


오늘 아침 일어나니 눈 주위가 가렵고 목이 칼칼하고 콧물 질질이다. 고양이 앨러지다. 그리고 그것은 면역체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의미이리라.

내가 맞는 항암제가 골수 파괴를 통한 백혈구억제니까 백혈구 수치가 낮은 경우에는 당연히 면역반응이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항암제를 맞으면 일단 피부가 아주 깨애끗해진다. 트러블 하나 없이 약간 다른 의미로 뽀송뽀송해 지는 것이다. 여드름 많이 나는 젊은이들은 정말 기적같은 뽀송한 피부가 된다는 얘길 들었다.

손톱의 큐티클 같은 것도 없어져서 마치 네일 관리 받은 것처럼 날렵해지는데 며칠 전부터 거스러미가 다시 일어나고 손톱 반달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대신 염증이 생기면 낫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번엔 내에 잇몸이 부어 올라 오랫동안 성가시게 했다. 오늘 아침 비로소 거의 다 나았다는 느낌.


마지막 공고한지 한달 하고 이틀 지났다. 다음 주 화요일 집중치료 최종 결과 나오는 날.

그 동안의 경과가 아무리 좋았어도 마음이 썩 심상하진 않다. 하지만 어떤 결과든 또 받아들이면 되는 것.

어쨌든 면역반응 땜에 괴롭다. 근질근질, 긁적긁적, 콜록콜록...


그래도 평화롭고 고즈넉한 일요일... 이다.



친구 주려고 모처럼... 아니 퇴원이래 처음으로 만든 화려한 파우치. 화려한 것과 점잖은 것 중에 고르랬더니 화려한 것이 좋다고 해서리...

이전엔 힘든 건 아닌데 이상하게 집중력이 떨어져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슬슬 바느질을 해야겠다.


이건 뒤쪽...



제자 아이가,

선생님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제가 아르바이트해서 번 거예요.

몇 시간 얘기하고 돌아가면서 내밀고 갔다.

병원에서 뵀을 때는 너무 무섭고 심란하고 걱정됐는데 지금 좋아보여서 정말 감사해요...

극구 사양하는데,

엄마가 꼭 드리랬어요...

퇴원하고 몇번 씩 찾아왔던 제자들은 늘 오기 전 전화해서 물었다.

선생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컨디션 괜찮으세요?

그 따뜻한 울림이 있는 물음이 주는 컥!!!! 목밑에서 올라오는 감동을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여 그들은 언제나 내게... 좋은 선생, 괜찮은 어른,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야겠다는 싱싱한 다짐을 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아주 좋다!!

가끔... 영화 아비정전에 나오는 장국영처럼 탱고는 아니지만 가끔 음악이 나오면 으쌰으쌰 보건체조도 아닌 것이 춤도 아닌 것이 몸을 움직여도 보고, 내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똘똘이한테, 그냥 자는 게 어떠냐, 나 지키느라 그러는거냐?  뭐 이런 실없는 말도 걸어보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글을 보다가 사소한 것에 빵!! 터져서 으흐흐 킬킬킬 하하하 혼자 웃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날들인데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참 즐겁다.

봄이 오면...

더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