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항암-마지막 공고- 8일차. 엥겔계수 95%
마지막이라고 마음 놓은 것도 없는데 막판 부작용이 좀 더 심한 듯하다.
근육통 심할까봐 타이레놀 처방 받아왔더니 근육통은 아직 거의 없고 대신 점막들이 죄 들고 일어났다.
입술은 1차 항암 때처럼 심하게 껍질이 잔뜩 벗겨지고 입술 안쪽 점막에서 모처럼 피도 보이고... 두통에 어지럼증에 식도와 위도 꽤 많이 쓰리더니 급기야 엊그제부터는 미슥거리기까지... 잇몸도 부어 올라서 아프다. 총체적 난국이다. 잉잉.
하여 퇴원하면서 받아와 먹었던 가스터정-위보호제- 처방 받으러 눈송이를 맞아가며 예전에 살던 동네 병원엘 다녀왔다. 히크만 소독하러 본병원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외래 진료를 못받아서 거기서 다시 전철에 택시를 타고 다녀왔다는...
가스터정이 약국에 없어서 복제약으로 대체...
아직 혈액 수치 저점 찍으려면 일주일 정도 더 지나야 하는데 내몸 기운 내라고 토닥토닥 하는 중.
혈색소 수치가 쪼매 낮은 상태로 항암제 투여를 해서 그런지 앉았다 일어나면 잠깐 핑그르르... 는 처음이다. 항암을 할수록 몸에 데미지가 축적돼서 그럴 것이다.
살면서 별로 어지럼증 두통 열 이런 것에 시달려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이것저것이 꽤 성가시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고 그저 성가신 정도...
그렇지만 집중력 많이 떨어져서 그건 좀 속상하다. 시간은 널럴하이 많은데 책도 별로 안 읽어지고 바느질도 안 되고 운동도 안 되고... 짐승처럼 삼시세끼 밥 먹는 것만 열심이다.
지난 주 냉장고의 당근이 생각나서 김밥을 말았다. 집 김밥의 소박한 맛. 압력 없이 밥을 해야하는데 또 잊었다. 과식을 부르는 메뉴...
나머지 당근은 잡채를 만들어야지. ㅋㅋ.
퇴원하고 정말 많이 먹어대고-??-있는 청국장.
울 엄니표 정도는 아니어도 뭐 그런대로...
금방 지은 밥에 푸들푸들한 두부 건져서 비벼 먹으면 맛있다. 왜 그렇게 청국장이 땡겼을까-??- 불가사의하다.
멸치와 호박과 감자 넣은 칼국수...
요새 며칠은 김치 넣은 칼국수다. 탄수화물은 축복이다.ㅋㅋ
겨울 되고 벌써 두 번째, 꼬리 반골 고았다. 친구들도 나눠주고 이번엔 속이 좀 미슥거려서 먹는 게 썩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지방과 단백질 보충원이다. 국물 좋아하는 나... 한테는 최고로 좋은 메뉴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기호가 된 고구마...
4.5킬로 두 박스를 거의 다 구워 먹었다. 고백하자면 난 고구마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인간... 어릴 때 구황작물의 추억도 있고 뭔가 고구마나 감자는 어른 되고는 일부러 먹은 적이 거의 없다.
항암 치료 하면서 다소 퍽퍽한 탄수화물이 좀 당기더니 급기야 프렌치 프라이가 맛있어지기까지 했다.
하하하.
햄버거 세트 메뉴를 사도 감자 튀김 대신 다른 걸로 바꿔 먹었을 정도였는데 흠...
그리고 과일...도 엄청 먹어대고 있다. 공고치료 하면서 귤 몇 박스 사과도 몇 박스 감도 잔뜩...얼마 전에 과일 떨어졌을 때 거의 금단증상이 일어날 정도였는데 맹세코 나는 과일을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아침에 사과 하나씩 먹으려고 하는 것 외엔 안 먹어도 그만이었다.
뭔가 체질? 혹은 식생이 좀 변하고 있는 것인지 단순히 항암제의 작용인지 궁금하다. 온몸의 피를 갈아치우면서 성향도 바뀌는 것인가...
어쨌거나 엥겔계수 95%의 삶이다. 하하하
이렇게 먹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되고 보니 삶과 일상은 정말 단순해진다. 그리고 단순함은 곧 편안함이기도 하다. 한동안 이렇게 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