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시작... 징후 2
토요일, 친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 옷을 벗었더니 저렇게 옆구리 쯤에 멍이 들어 있었다.
사실 저것도 며칠 지난 후 찍은 것인데 가운데 쯤 볼록하게 피가 고여 있어서 약간의 동통이 있었다.
뭔가 이상하고 찝찝하긴 했지만 뭐...
아픈 데도 없고 피곤하지도 않고 해서 그냥 자고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밤 사이에 허벅지... -혐오사진 안구 조심 ^^;;-
뭐 그래도 씩씩하게 나가 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에 고민을 좀 하다가 봄에 건강검진 한 내과에 가서 혈압을 쟀다. -당시 고혈압 경계라 2차 검진 소견이 나왔었고 게다가 저런 증세엔 어딜 가야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리...-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가 있었고 체중 조절 잘했다고 의사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냥 나오려다가 옷을 걷어 보이면서, 이건 왜이럴까요? 물었다.
의사는 잠깐 놀라더니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그러다가 안되겠는지 그자리에서 세브란스 혈액내과에 직접 예약을 잡아주고 소견서를 써 줬다.
이튿날 터덜터덜 세브란스 병원엘 갔고 거기서도 일주일 후에 나오는 혈액검사를 하자고 했다. 피 뽑아주고 오니 아예 결과를 보고 가라고 하길래 그러마고 기다렸는데 결과는 백혈병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입원하라고...
내 첫마디는 헐!!! 이었고 백혈병이라기엔 멍든 거 외에 이렇게 아무런 증세가 없을 수 있냐고 따졌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
의사는 자기들이 경찰은 아니니까 잡아둘 수는 없지만 우리가 멍든 것을 한두번 봤겠냐고 화를 내기까지...
그때 내가 한 말이, 만약 백혈병이라면 나 어차피 혼자 사는데 치료 받느라 여러 사람에게 폐 끼치고 고생하느니 그냥 죽겠다고... 뭐 그런 싸가지 없는 소리를 했다.
어쨌거나 당장 입원하기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다음 날도 일이 있었고 그 다음날고 수업 보충이 있었고 토요일엔 학원 수업이 있었고 뭐 기타등등 사소한 것들이 걸려 망설이고 나와 처방을 받는데 간호사가 간곡히 입원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결국 입원 결심하고 수속하러 갔는데 입원실이 없으니까 오늘은 그냥 가시고 다음 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싸~ 하면서 -미쳤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병원에서 병실은 없지만 의사 선생님이 혈소판 수혈 처방을 내렸으니 잠깐 와서 받고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은 바빠서 안되고 다음 날 수혈은 받고 입원은 월요일 쯤 하겠다고 내 맘대로 처방을 하고는 끊었다. 담당자는 선생님께 여쭤보고 연락을 주겠다더니 연락이 없길래 괜찮은가 보다... 하고 친구네 가게에서 열시까지 일을 도와주고 왔다.
나가기 전에 샤워를 하면서 문득, 진짜로 백혈병이라면 참 쓸쓸한 인생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위로 물을 맞으며 15초 쯤 꺽꺽 울었다.
그리고는 친구네 가게에서는 열시까지 있었지만 특별히 힘들거나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소변을 보는데 아뿔싸!!! 소변색이 이상했다.
혈뇨였다.
내가 아무리 건방지고 겁없는 인간이라고 해도 이건 심각한 증세라는 걸 단숨에 깨달았다.
나는 주섬주섬 칫솔이랑 수건이랑 팬티 두 장을 가방에 챙겨넣고-입원하겠지 싶어서-사촌언니한테 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하고 택시 타고 세브란스 응급실로 갔다.
혈액검사를 다시 하고 혈소판 수혈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골수검사를 했다.
주치의는 골수검사 결과가 2주 후에 나오니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또 아싸~~가도 되나보다... 하고 주섬주섬 퇴원 준비를 하는데 1분도 안돼서 레지던트가 오더니 교수님 말씀하시고 바로 진단의학과에서 나를 보내면 안된다는 오더가 내렸단다...
그렇게 나는 백혈병 환자가 되어 병원에 붙들리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살아나려고 혹은 누군가가 살려내기 위해 순간순간 절묘하게 상황들이 맞아 떨어졌는지 모른다.
내가 여전히 미련을 떨고 응급실에 가질 않았거나... 간발의 차로 주치의 말대로 집으로 갔더라면 그날 밤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
수혈을 통해 만 팔천에서 10만 가까이 올랐던 혈소판이 다음 날 고대로 만팔천으로 내려가 있었다. -표준은 15만에서 40만-
만약 그랬다면 2주 후는 커녕 이틀 후 쯤 나는 침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수도...
M3 유형은 출혈성이 워낙 강해서 병원에서조차 단 30분 혹은 몇시간 사이에 처치할 사이도 없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저 사진 속의 멍-피하출혈-이 뇌나 다른 장기에서 일어났다면 나는 고통 없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투 비 컨티뉴~
사족: 1차 공고 후유증은 꽤 오래 간다. 아직도 온몸 근육통에 시달린다. 날이 흐리니 더 하는 듯... 전혀 차도가 없어서 어기적어기적...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내 몸은 어느 부분 많이 무너지고 있는 모양.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