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고마운 날들이다

오애도 2017. 11. 25. 11:50

어제 병원 가는 날...

혈소판 수치만 빼고 거의 그대로다. 사흘 동안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중인 것인지 아직 바닥을 보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서 수혈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더니 그만 하면 괜찮을 거 같다고...

베사노이드도 빠지고 항생제만 나흘치 받아왔다.

다음 항암은 이번 항암 회복하는 거 봐서 한 달 후가 될거라고...

혹시 다른 약 쓰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같은 약이란다.  뭐 더 고약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돌아오는 길에 잠실나루 역 근처에서 군밤을 한 봉지 샀다. 요즘 들어 매번 하는 짓이다. 사실 나는 밤이나 고구마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항암치료 하면서 이상하게 그나마 넘길 수 있을 거 같은 것이 고구마나 감자 같은 좀 퍽퍽한 탄수화물 종류였었다. 약간 목이 메면, 배속 저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약간의 미슥거림? 같은 게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 거의 한 달 가까이 영양제 매달고 이온음료만 먹고 살았다. ㅋ.순전히 화장실 때문에...

군밤을 사서 조물조물 까먹고 있자면 엄니 생각이 난다. 엄니 계시는 동안 정말 많은 밤을 삶아 드렸다. 그래도 노인한테 필요한 영양이 집약적으로 모여 있다는 생각에...

병과 지내면서 엄니 생각이 훨씬 많이 난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 같은 것과 함께 떠오르는 울엄니...


수능이 끝나고 재수 했던 제자아이한테 연락이 왔다.

대애박!!! 저 대박이예요. 몽땅 1등급이예요...

나는 그럴 줄 알았다. ㅋㅋ. 드디어 니가 원하는 서울대 철학과 가는 거냐?

모르겠어요...

갈 수 있을 겨. 넌 교수가 될 거고 그게 어울리거든.


꿈이 대학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그로 유학 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선생님 덕분이예요. 어떻게 선생님 말씀하신대로 다아 되고 있어요. ㅋ 

그럴 리가 있냐.  애초에 넌 다이아몬드였다. 다이아몬드가 석탄 노릇을 하고 있더라. 열과 압력이 있으면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지만 너는 애초에 다이아였느니라... 아니면 열과 압력을 아직 가하지 않고 있었거나... 그리고 넌 무엇보다도 착한 인간이잖냐... ㅋㅋ

그럼 저 배낭 주시는 거예요?

못 들어가도 주려고 했다.... ㅋㅋ-고 3 때 서울대 들어가면 퀼트배낭이 이쁘다고 해서 준다고 했었다-


성향이, 정말 순수한 '학문'에 어울리는데 자꾸 좋은-??-직업 아니면 순수하게 정서에 맞는 과를 선택한다고 해서 갑론을박 하다가 나중엔 매번 울음을 터뜨렸었다.

가슴에 ACE라고 로고가 박혀 있는 티셔츠를 6년 넘게 입고 다녀서 내 주위에서는 에이스 티셔츠로 통한다는... 하하하.

 어쨌거나 참 잘했다. 그리고 고맙다.

내 꿈도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서 저널리스트가 되는 거였단다...


어제는 ROTC로 가있는 제자가 모처럼 전화가 왔다. 어떠시냐고... 공군 무슨 시험이 있어서 잠시 나왔는데 합격하믄 비행기 태워드릴게요... 했다.

하하하. 좋다!!!! 그리고 고맙다.


도처에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 투성이다.

그리고... 살아 있어서 고마운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