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곳이 묵정밭이 돼가고 있다는 것조차도 의식을 안 했다. 돌이켜보니 책 읽는 것도 오랫동안 안 했고 바느질도 운동도 글쓰는 일도 당최 하는 일이라고는 없이 때우듯 살고 있다.
어제는 일이 있어서 낮에 교보문고엘 들렀다.
새로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들여다보다가 아이가 부탁한 문제집 한 권만 사갖고 터덜터덜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소설 읽는게 별 감흥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의 수필집은 굉장히 좋아하는 터라 예전 같으면 앞뒤 생각없이 사들고 왔을 것인데 어째 영 내키지가 않았다. 책이 싫은 게 아니라 그리고 읽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사소한 물건들이 쌓이는 게 어째 시일 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물건들은 자체분열하듯이 늘어난다.
집에도 책은 많다. 다아 읽지 않은 책들도 많고 여러번 곱씹어 읽어도 좋을 책들도 많다. 같은 책을 읽고읽고읽고... 그러면서 울리는 자간과 행간의 소리들이 얼마나 묘한 감흥이 있는 것인지 그것들 느끼는 일도 오래 전의 일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때는 삶이 누리는 것이냐 견디는 것이냐 따위의 생각을 꽤 진지하게 했었다. 지금은... 견디는 것도 누리는 것도 아닌 그저 때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때우고 가는 것이 삶인가... 하하하.
초겨울엔 무가 맛있어서 대충 고춧가루에 젓갈만 넣고 버무려도 맛있었을 텐데 그땐 한번도 안 담갔던 깍두기를 모처럼 담갔다. 무우는 싱겁고 물도 별로 없어서 크게 기대 안 하고 대충 버무려 넣었는데 오잉!!! 의외로 맛있다.
요새 며칠 종종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어적어적 깍두기랑 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사는 게 별 게 아니다. 맨밥에 깍두기랑 밥 먹는 것만큼이나 그저 그런 소소한, 무덤덤한 어찌 보면 가치없어 보이는.... 일일 뿐이다.
엄니는 점점 더 참혹하리만치 무기력해지신다.
아니 참혹이라는 말은 엄니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엄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다.
엄니를 보면서 점점 참혹하게 무너져내리는 내 마음...
그렇게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은 무너져서 바닥을 헤매고 있는 중...
아이들과 떠들 때 외에는 참 조용히 한 마디도 안 하고 살고 있다. 마음의 들끓음도 생각의 어지러움도 없다.
이것은 평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