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 주절...
한 달에 한 번 하는 소박한 계모임에서 정말 소박한 7처넌짜리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라면 사리와 공기밥이 무제한 리필인데 뭐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그만 과식을 했지요.
아침만 먹고 점심 겸 저녁이었으니까 그래서 배가 많이 고팠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잔뜩 먹어도 먹는 도중에는 포만감이 심하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속이 부대껴 혼났습니다.
결국 조금 전 편의점에서 사다 놓은 소화제 한 병을 먹었습니다.
정말 한참만에 먹은 소화제입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으로부터 튼튼한 위장을 내려받은 터라 체하거나 배탈 따위는 거의 없습니다. 뭐 사실 위장 상태가 건강하니까 이렇게 먹는대로 토실토실 투실투실 살이 오르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하하.
한동안 수저질 못하는 엄니 덕분에 엄니 식사 끝나고 나는 혼자서 대충 밥을 먹었습니다. 다행이 요즘 엄니는 식탁에 앉아서 당신 손으로 식사를 하십니다.
얼마 전에
엄마 난 요새 엄니 앞에서 밥을 못 먹겄어.
왜?
엄니 글케 힘들게 드시는데 옆에서 후루룩 쩝쩝 어적어적 먹으믄 괜히 짐승스럽기도 하고 산다는게 머 이렇게 쓸쓸한가 싶어서... 효녀인 척 하려는 거 아녀.
엄니는 멀뚱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렇잖어. 엄니가 이렇게 힘들게 밥을 먹고 오랜 시간을 기운 빠져 누워 계실지 예전에는 상상도 안했거덩. 엄니도 내 나이 땐 건강하고 잘 드셨을 것이고 그 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장난으로도 생각 안 하셨을 거 아녀.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한 걸 아는디...
나도 몰랐다... 야.
언젠간 나도 그럴 거 아녀?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 다 그럴 것인데 그게 쓸쓸한 거지.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엄마는 성공한 겨. 나처럼 괜찮은 딸도 있잖어. 클클
대충 자화자찬에 공치사로 끝냈지만 -요샌 저렇게 대충 킬킬거린다- 감정의 과장이나 감정 유희 따위가 아닌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현실입니다.
흠...
하루의 대부분을 여전히 누워 계시지만 엄니는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얼굴은 평화롭고 유쾌하시고 내일이믄 낫겄지 열심히 희망에 차 계십니다. 잘 드시고... 두어 달을 밖에 안 나가셨으니 얼굴이 하얗습니다. 나는 엄니 귀부인 같어 어쩌구 킬킬거리며 비타민 디 챙기고 있습니다.
하여 나는 인생역전 했습니다. 어릴 때 엄니 나가시믄 돌아오길 꼬박꼬박 기다리는 대신 요샌 엄니가 내가 나가면 꼬박꼬박 기다리시거든요. 그런 의미로 엄니는 로또입니다. 하하하
오늘 새벽 꿈에 엄니가 다리가 다 나으셔서 씩씩하게 걷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훨씬 가볍습니다.
인문학 책을 좀 읽어야겠습니다. 머리 가벼운 책도 무거운 책도 안 읽은지 꽤 된 듯 합니다.
아이들 시험 기간...
일상의 축복같은 제자들...
가을밤입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이 다가오는지 맘이 설레는 요즘입니다. 나쁘거나 무거운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