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홍차를 마신다.

오애도 2014. 9. 7. 14:32

추석...

두 해 전부터 귀향을 멈추고 혼자 지냈었는데 올 해는 엄니랑 지냅니다.

며칠 전부터 기분이나 내게 전도 부치고 갈비찜도 하고 잡채도 할까 하면서 엄니한테 농담처럼 말했더니 너 먹고 싶으믄 하라고 하셨지만 물론 난 안 했습니다. ㅋㅋ .

뭐 사실 음식 그까이꺼 내 수준으로 -??- 맘만 먹으면 껌입니다.

 이딴 걸 내가 왜 해!! 이런 맘으로 음식하믄서 부글부글 부아를 끓이고 고따위로 맘으로 만든 음식 차례상에 올리면 복은 커녕 액이 되어 올 거라는 생각.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지요.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깨끗한 거래. 하여 점점 제사건 차례건 없어지는 지도 모릅니다.

나야 지극히 신비주의적인 인간인지라 제삿덕은 있다고 믿습니다. 뭐 열심히 십일조 내는 마음하고 비슷하지 않을까요?   ㅋㅋ

 송편은 어제 수업 온 학생이 금방 쪄낸 것을 갖다 줘서 맛있게 얌냠 먹었구요. 안 그랬으면 동네 떡집이나 백화점에 가서 한 팩 사다 먹었을 겁니다.

며칠동안 물속 같은 시간이어서  곰실곰실 이것저것 바느질도 하고 홍차도 마시고 기분 내키면 우당탕탕 청소며 빨래도 하고 친구며 제자며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며칠 고마우리만치 좋은 날씨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길은 한가하고 조용합니다. 늘 보이는 풍경도 이렇게 명절밑이 되면 어딘가 독특한 질감과 색깔이 느껴집니다. 하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관습은 그렇게 공기의 질감과 색깔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행복하거나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불행하거나 슬프거나 괴롭지도 않습니다. 군데군데 가을꽃이 피어 있고 풀냄새 풍기며 말라가는 풀들이 있고 멀리 산들이 놓여 있지만 평화롭고 느긋합니다.

 그런 길을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인생의 가을길...

 

지난 번 글을 읽은 한창 사춘기인 제자 아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길을 걷는데 어떤 존재인가요? 지고 가거나 업고 가야 하는 힘든 존재인가요?

선생한테 어찌 제자가 힘들게 지거나 업고 가야 하는 존재일 수가 있겠느냐. 그저 손 잡고 가는 존재이니라. 두런두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외롭지 않게 더러는 기쁨이 되기도 하고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너 뿐만 아니라 내게 있어서 제자들은 다아 똑같단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선생님은 저를 업고 가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저 편안히 제가 업혀서 가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면 내가 더 고마운 것이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런 마음이라면 좋겠지만 언젠간 너도 달라질 거다.

그럴 리 없어요...

하면서 아이는 내 팔짱을 낍니다.  

 

아이야. 그러나 세상 만물은 변하는 거란다. 생각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색깔과 모양도 변하는 게 세상의 이치지. 누구나 그걸 알고 있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에 숨어 있는 무상의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리거나 영원히 못 깨닫고 가는 게 삶인지도 몰라.

 

 추석의 색깔도 그렇게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본질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보는 '내 눈'이 변했을 뿐인지 모릅니다.

 

종종 보면 분명 누구나 한 번씩밖에 갈 수 없는 길인데 여러번 걸었던 길처럼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노련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흠... 얼그레이 티가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