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주일
엄니 다치신 지 일 주일이 지났다. 병원 다녀오신 이래로 처음엔 전혀 못 일어나셨다가 다음 날엔 30초, 그 다음날엔 일분, 일분에서 삼분 오늘은 오분... 정도 이제 앉아 계신다. 화장실도 전혀 못 가시고 식사도 물론 스스로 못하신다. 나 붙들고 일어서서 오늘은 서너 발자국 걸었고 오후엔 전혀 못 하셨다.
뭐... 좋아지고 있으신 거다.
엄니는 의외로 평화로우시다. 얼굴도 밝고 우수어린 표정도 없다. 가끔 내가 던지는 실없는 비유에 ㅋㅋ 웃으시기도 하고 드라마 보시다가 내게 또렷하고 정확하게 이전의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고... 잘 잡숫지는 않지만 잘 주무신다. 생각해보니 피를 흘린 게 아니니까 이번엔 먹는 것보다는 푸욱 자는 게 훨씬 회복에 도움이 되리라.
엄청나게 큰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골절이 없는 대신 근육들은 많이 놀랬는지 여기저기가 뒤늦게 아프신 모양이다. 대변도 자주 보셔서 며칠 전엔 하루에 다섯 번을!!!
너무 잦아서 괜히 이것저것 어디가 심각하게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이었는데 다행이 어제부터 갠찮아지셨다. 저녁 때마다, 내일은 화장실에 갈 수 있겄지... 아니 가야지...말씀하셨는데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할 듯...그래도 엄니가 냄새를 전혀 못 맡으셔서 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엄니는 훨씬 민망해 하셨을 것이고 미안해 하셨을 테니 말이다.
나일 먹으면서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코가 무디어지는 것은 어쩌면 덜 듣고, 덜 보고 덜 맡으며 살라는 자연의 섭리인지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덜 시달리고 덜 욕심부리고 덜 매달리게 되면 마음은 훨씬 평화로울 것이 아닌가!!!
그렇게, 다치신 엄니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그리고 문득, 아부지 아니면 하나님, 저 시험하시는 거여요? 언제 손들고 나오나... 언제 정말 못해 먹겠어. 하고 기브 업 하나... 뭐 이렇게 삐딱하게 묻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하하.
그치만 아부지. 아부지도 절 잘 모르시내벼요. 뭐 그 정도 물리적인 거에 기브업하고 손들고 나올만큼 내가 조잡하거나 부박한 영혼은 아녀요~~. 그리고 괜히 불쌍한 엄니한테 그러지 마셔요. 하나님이건 아부지건...
머 그래도 이만한 거 보면 그저 시험은 시험인 거 맞지요? 그리고 이렇게 따졌다고 퍽!!!! 다시 뒤통수는 치지 마셔요~~죄송합니다~~ 하고 얍삽하게 뒷마무리까지 한다.
사고 나기 전날, 지난 번에 사온 엄니 바지가 세탁기에 넣고 돌렸더니 허리의 고무줄 부분이 튿어져서 꿰매겠다고 바늘을 찾는데 엄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나중에 꼬매 입을께
언제?
나중에 집에 가서...
하하하하. 하이고 엄마 그럼 여름 다 지나가유. 이거 여름 바지여. 가셔도 내년 봄에나 가실 거 같은디... 내가 바느질의 여왕인 거 몰러유? 퀼트의 여왕이잖어. 글고 엄마보다 눈이 밝아도 내가 더 밝지... 클클
아마 엄마는 나는 여전히 옷이 튿어지면 꿰매주던 어릴 때의 어린 딸로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뭐 퀼트 바느질은 퀼트 바느질이고 그런 실용적 바느질은 당연히 '엄마'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으리라.
또한 엄마는 그렇게 당연히 집으로 가시는 것에 대해 한 치 의심도 없으셨다.
어쨌거나 일은 일어났고 가는 길 어느 부분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지만 또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씩 걷다 보면 문득 내게 주어진 길을 다 걸어낸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