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아름다웠던 토요일...

오애도 2014. 5. 28. 12:32

 지난 토요일 우리말 겨루기 예심 치르러 갔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전철역에서 내려 가는 길에 자잘한 꽃들이 피어 있길레 들여다 봤더니 분명 씀바귀 꽃입니다. 잎을 보니 씀바귀가 맞는데 혹시 몰라서 이거 쓰면서 엄니, 씀바귀 꽃이 노랗고 자잘하고 동글동글한 거 맞어유? 했더니 화장실 가시던 엄니 맞다고 끄덕끄덕....

노란 융단처럼 피어 있던 꽃들... 야생화는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나하나는 얼마나 이쁜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20년 더 전에 본 도종환의 시에 씀바귀에 관한 시가 있는 걸 기억합니다.

한겨울 들에 나가 씀바귀를 만나보라... 하는 구절이 있던데-그때는 꽤 비장하게 혼자서 큰소리로 읽기도 했는데  의미는 뭐 쓰고 쓴 맛과 향내를 품고 겨울을 견디는 민중의 모습... 을 상징했겠지만 나는 쓴 맛 품은 씀바귀뿐만 아니라 냉이나 달래 같은 향그러운 나물들도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는 이유는 생명력의 발현을 보여주는 놀라운 자연의 섭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  

 

정기예심-신청해서 뽑인 사람들이 치르는-이 아니라 즉석에서 신청해 치르는 시험인지라 수험생-??-들은 거의 한 번 이상 출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승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두 번 이상 나왔던 사람들도 여럿이었습니다. 마치 패자부활전 같았습니다. 

여하간...

엄니 봉양-??- 덕분에 공부는 거의 할랑 할랑하게 했던 터라 기본으로 보자는 심리도 있었고 지난 번 4월 예심을 보니 어째 시험 패턴이 달라져서-고유어의 비중이 많이 줄었고 상당히 생경한 사자정어도 등장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뭐 간신히 유추해서 맞히긴 했지만 버벅 버벅- 특별히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할 지 감 잡는 일만 하다가 갔습니다.

결과는 두 문제 씩이나 틀렸는데 이야~~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럽게도 깍두기를 틀리는 비극이!!! 깎두기로 썼는데 저건 모르는 낱말도 아니고 중학교 3학년 생활국어 바르게 쓰기에 나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지난 번 본선에서 눈살-눈쌀, 4월 예심에서 걷어붙이다를 걷어부치다 같은... 늘 자연스럽게 쓰는 낱말들이 어째 시험이다 싶으면 그야말로 발광이 일어나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답지를 내는 순간 아~~~~ 하고 깨닫습니다. 어릴 때 받아쓰기 단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는 인간인데 말입니다. 까다로운 띄어쓰기도 아니고...

지금까지 살면서 허구한날 틀린 낱말 지적질하는 걸 일삼았는데 죄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긴급하게 반성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말 이럴 수는 없을 겁니다. 하하하.

 

각설하고... 시험보기 전 어느 분이 자꾸 저쪽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뭐 두 번이나 나가긴 했지만 우승 같은 건 한 번도 못했으니까 알아보는 사람도 그다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대신 나는 제법 기억력이 센 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이 났는데 대충 우승해서 어떤 낱말에서 틀린 것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분도 당연히 나한테는 익숙한 얼굴에 목소리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설마 나를 기억해 쳐다보나...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저한테 다가오시더니 제 손을 잡으며 저를 꼭 만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작년 패자부활전에서 보고 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블로그 글을 봤고 그 때부터 독자가 되신 모양입니다.

 

그때부터였다면 사실 가장 침체기였고 우울했고 바닥이었던 심리였던 터라 글이 좋았을 리 만무했던 터라 스스로 부끄럽고 민망했지요.

그래도 내 글에 울고 웃고 글이 올라오길 기다린다는 말씀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쁘고 고맙고 민망하고 부끄럽고 쑥스러웠지만 참으로 행복했지요.

우린 나란히 두 개씩 틀려서 공동 3등이었습니다. ^^ 면접도 나란히 앉아서 봤구요. 티비 출연 이후 행적을 듣고 보니 참으로 품위 있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내 글의 좋은 독자인 것은 오히려 내가 감사한 일.

요즘 그렇게 낯선 곳에서 불쑥불쑥 드러나지 않은 독자들과 만납니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서 오래 전 칼럼 시절을 기억하는 독자들과 맞팔을 했지요.

그리고 특히 지극히 개인적인 '내 어머니' 이야기에 메일이나 비밀글로 보여주신 반응은 오히려 제가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시험 결과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그리하여 그 토요일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게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저녁엔... 제자들과 만났습니다. 스승의 날 약속이 미뤄졌는데 1차로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 세 주전자 쯤 먹고 2차는 중국집 짬뽕과 찹쌀 탕수육 안주로 소주 한 병...

젊고 건장하고 착한 제자들... 시계 찬 손목이 멋있습니다. 하하하.

 

 

엊저녁엔... 제자와 뮤지컬 고스트 보고 왔습니다. 벌써 세번 째... 아이비 몰리와 이경수 칼 캐스팅으로 일부러 선택해서 봤는데 아이비 성량 후덜덜!! 어찌나 눈물을 절절하게 흘리던지 따라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는... 주원군 눈물도 역시 만만찮았고...

중학교 1학년인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순진하지만 재기발랄한 제자의 뒷태.

보고 나서,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었요. 하고 엄지 손가락 치켜세우더군요. 주원군 퇴근길까지 보겠다고 해서-연예인이라고- 기다렸다 보고 왔습니다.

지난 번 홀스또메르에 나온 아저씨도 유명 연예인이여~ ㅋㅋㅋ

제가 알 게 뭐예요? 모르는 사람인데...

 

항상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엊그제는, 선생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의미있고 가치있는 주제로 격상시키는 재주가 있으세요. 합니다.

그걸 알아주는 니가 더 재주가 있는 거다. ㅋㅋ

선생님 만약에 사기꾼이 됐다면 나라를 팔아먹었을 지도 모르고 종교인이 됐다면 세상을 흔들었을 거예요. 사이비 종교로....ㅋㅋㅋㅋ

그래서 난 무형의 것들을 파는 장사는 못한단다. 당연히 특정한 종교도 없지.

 

요즘은 모든 아이들, 제자들, 젊은 사람들이 보석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 복이겠지요.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내 능력은 아닐 것입니다.

하여 문득 두리번 두리번 해 보면 감사할 것 투성이이지요.

 

 

 

 

티켓 한 장은 생일기념 반값 할인이었고 한 장은 현장 예매였던 터라 일찍 가서 표 사고 저녁 먹으러 갔습니다.

아이가 많이 먹을 수 있다길레 아래층에 있는 이탈리아식 뷔페.. 라고 붙여진 곳에 들어갔는데 흐미.. 속았습니다. 아이가 먹는 양에... ㅋㅋ

어쨌거나 샐러드 접시... 

 

 

두번 째, 파스타 접시

 

 

세번 째 피자며 구운 고기 접시... 디저트로 요거트와 자몽과 손가락만하게 자른 레몬 치즈 케익...

돈이 아까웠다는 전설이!!!

 

 

여유는... 그것이 시간이든 돈이든 마음이든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구임순 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오래 된 책 한 권을 가치 있는 분께 선물하는 기쁨을 주셔서 감사하고, 허접하고 민망한 글에 감동해 주셔서 감사하고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거리낌 없이 드러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와서 엄니한데 말씀드렸더니 활짝 기쁘게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웃으신 걸 본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지요.

그리고 엄니 맛있는 거 많이 사 드렸습니다. ^0^;;

이번 도전 반드시 성공하시길 빌겠습니다.

보고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