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에 문득 엄니가,
주인 어디 갔니? 하시더군요. 나는 똘똘이더러 농담하는 줄 알고, 여깄잖어. 했더니 아니 고양이 말고 집 주인...
내가 주인인디 누구?
아니 같이 있던 사람...
나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그 사람 갔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집에 오신 이래로 두 번 쯤 이상하게 누가 같이 있는 거 같다고 하셨었지요.
그 사람이 갔다는 것입니다. 나는 놀라서,
엄마, 무섭게 왜 그랴?
했더니,
무섭긴 뭐가 무서워...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정말 누구였을까요? 난 울아부지라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 부랴부랴 점집-??-엘 찾아갔습니
다. 들은 얘기는 썩 고무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그냥 차분히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역시 나더러 당신이 신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러모로 대단히 아깝고 아까운 인물이라고... ㅎㅎㅎ
하지만 난 주술적인 인간이긴 하지만 사실 영적으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 게 찾아올 것 같지도 않구요. 그저 통찰력이 좀 남다른 정도...
아버지가 그러신답니다.
어머니 버리지 마라. 너에겐 정말 면목없고 미안하구나. 오래 힘들게 하진 않을 거다...
엄니 넘어져서 다치고 얼라들 시험도 다아 끝났던 엊그제 저녁. 난 문득 내 어머니가 가엾어서 꺼이꺼이 통곡이 하고 싶었습니다. 엄니 안계셨다면 그랬을 겁니다.
놀라우리만치 엄니의 상처는 빨리 회복됐습니다. 대신 걷는다거나 하는 물리적인 증세는 그만 처음 오실 때와 같아졌습니다.
어제 오늘 나머지 자식들이 다아 다녀갔습니다. 엄니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중 상냥한 셋째 아들이 돌아가기 전 엄니 안으며 울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했습니다.
울엄니...
내가 뭐가 불쌍햐. 아들이 읎어, 딸이 읎어?
그렇지요? 그래도 엄니... 인생은 쓸쓸한 겁니다. 어떻게 살아도 쓸쓸한 겁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겁니다. 누구도 대신 져 줄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지고 살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지요. 엄니도 나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엄니 목욕시키면서 보면 몸매가 나와 똑같습니다. 두리둥실한 허리와 배도 그렇고 한없이 얇고 부드러운 피부도 그렇고...
늙고 야위고 병드신 엄니의 몸을 보면서 머잖아의 '나'를 봅니다. 현상을 보고 상황을 통찰하는 능력이 이런 땐 무디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늙음과 인생의 덧없음과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서 오는 삶의 쓸쓸함이 전율처럼 일어납니다.
그래도 나는 유쾌하게 엄니랑 나란히 앉아 VOD로 '수상한 그녀'도 보고 '전설의 고향'도 보고 '장희빈'도 봅니다. 식사 도중에 실수로 흘리는 엄니한테 덱덱거리고 밤이면 나란히 누워 잡니다. 때때로 터지는 촌철살인적인 엄니의 말에 으흐흐 킬킬킬 웃어대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내 마음도... 엄니도...
찬란하게 빛나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