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봄 날에 이런저런 생각.

오애도 2014. 3. 27. 10:23

모처럼 엄니한테 다녀왔습니다.

전날 큰오빠한테 아무래도 엄니를 요양원으로 모셔야겠다는 얘길 듣고 헐!!! 했었지요.

보름 전에 다시 입원하셨던 엄니는 전화 목소리로만 들어도 매번 이백퍼센트 쯤 나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다 그 전날 전화 통화에서도 엄니 보행의자 사 드릴까? 했더니 나중에 집에 가면 사줘... 하셨으니까요.

요양원이라는 데가 도저히 자식이거나 가족들이 그저 애정이거나 효심으로만 감당하기엔 물리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회복의 가능성이 없을 때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터라 이거이 불쑥불쑥 나아지는게 확실한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잠시 갑론을박했습니다.

 오빠는 니가 몰라서 그런다. 가끔 한 번 씩 와서 보고 뭘 안다고 그러냐. 이제 당신 혼자 집에 가서 생활하기는 어렵다. 집에 가고 싶어 하시지도 않고 엄니가 변하셨다. 예전의 엄니가 아니다. 혼자 계시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쩌냐... 의 요지고 나는 그렇지 않다. 전화 목소리 세 마디만 들어도 엄니가 어떤 상황인지 안다.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엄니가 오빠 집에 있을 때 엄니 성격으로 어떤 마음이었을지 오빤 아느냐, 해 준 게 없어서 나하고는 절대 같이 안 산다고 하셨던 엄니가 퇴원해서 울 집에 오신다고 하더라. 그게 뭔지 아느냐, 빨리 나아서 집에 가고 싶다는 말씀이다. 언젠가 가실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니 다치신 지 석 달도 안됐다. 그 시간에 그만큼 나아지셨으면 대단히 빠른 회복이고 그저 단지 골절의 문제다. 내가 가서 엄니 봐야겠다. 그러니 아직 입도 뻥긋하지 마라. 일단은 울집에 모시겠다.

오빠는, 그래 니가 원하는대로 해주마... 라고 핑곗김에 잘됐다 싶었는지 그렇게 얘기하고 끊었습니다.

 한참 전에 박수무당한테 점을 봤을 때,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신내린 여인한테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얘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떤 상황에 대해 판단한 것이 80퍼센트가  맞을 거다. 그것은 보통 사람의-무당이 아닌- 판단으로는 거의 신적인 거다....'

 그리고 정말 내 직관대로 어제 엄니는 완벽하게 예전의 엄니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직 걷는 거야 조금 불편하지만 그것은 점점 나아질 것이고 당연히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모처럼 새새거리며 엄니랑 한참을 떠들다 왔습니다. 간병인들과 가끔 농담을 하면서 웃는 엄니를 보면서 이젠 됐구나... 하고 마음이 놓였지요. 두 달 보름 동안 웃음기도 눈의 생기도 없었던 엄니는 집에 있는 쌀이 썩었을 지 모른다고 걱정도, 누가 전화를 하고 놀러가서 뭔가를 집에 사다 놨다는데 뭔지 모르겄다고 말씀도 하시고 티비에 나오는 정치인 흉도 보시고...  

 우울증이 나서서-나아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야. 여기 배 밑으로 커다란 띠를 둘러 놓은 것처럼 답답했는디 병원 와서 그게 다 나섰다.

 그렇지, 엄마. 몸 아니고 신경성 병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잖어?

그렇게 엄니와 조우하고는 저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버스 타고 내려갈 때 오빠한테 전화 왔습니다. 이틀 동안 안 갔다가 어제 가봤더니 니 말대로 엄니 많이 좋아지셨다. 낼 모레 쉬는 날이니께 퇴원시켜서 너네 집에 모시고 갈겨...

하여 한동안 엄니와 같이 지내게 될 것입니다.

 사흘 전 엄니랑 통화하기 전 꿈에, 엄니가 어느 수용시설 같은 데서 젊은 부부한테 학대-??-를 당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엄니는 엎드려 젊은 여자를 등에 태우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분명 아버지가 수용자였는데 이름은 엄니였던 것이었지요. 나는 그것을 보고 분개해서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차가 와서 엄니를 모셔 갔습니다.

 깨고 나서 문득 엄니가 다 나았구나... 생각했습니다. 수용시설은 병원일 것이고 엄니 등에 타고 있던 젊은 여자는 분명 엄니를 괴롭히던 병마였을 테고-그 여자는 허리 부분에 앉아 있었는데 엄니 아픈 부위가 허리 근처이고 또한 신경성 복부 팽만감도 아랫배 근처였으니까- 119는 엄니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틀림없이 저 쪽 세상에 계신 아버지의 가호가 있었을 것입니다.

 

 흔히 자식을 낳아 보면 부모맘을 안다고 합니다. 하여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아 본 우리같은 싱글들한테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사는 사람들은 그 자식이 바글바글 속을 썩이든 션찮고 별볼일 없다고 늘 투덜대면서도 남편 있는 것에 이상한 우월감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주위에서 보면 늙으신 부모를 모시고 사는 싱글들이 많습니다. 결혼해서 자식들 있는 형제 자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저 혼자 살기 때문에 혹은 자식 없어서 자식들을 향해 등줄기 아려본 적 없기 때문에 등줄기 아리는 대신 그나마 늙은 부모에 대한 연민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요.

 내자식 때문에 등줄기 아리는 걸 막을 수 없지만 내새끼 때문에 내 등줄기 아리면 나 때문에 등줄기 아렸을 부모맘은 그저 아는 것으로 그치는 모양입니다. 당연히  나같은 인간은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단지 석 달도 안 되는 엄니의 병석에 그만 지치는 우리 자식을들 보면서 인연의 슬쓸함을 관계의 허망함을 살아 있는 혹은 남아 있는 나날들의 슬픔에 잠시 우울해집니다.

 

 아아, 혼자라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