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걷는다.
어제... 점심 나절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과천행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에서 내려 점심으로 김치철판볶음밥을 먹고는 씩씩하게 공원을 지나고 도서관 앞을 지나고 아파트단지를 지나 서울대공원엘 갔습니다.
날씨는 따뜻했는데 바람은 좀 차서 국립미술관의 호숫가 테이블에 앉아 있기는 한 시간이 벅찼습니다.
겨우내 꽝꽝 얼었던 호숫물도 저렇게 녹아 잔잔하게 누워 있습니다.
미술관 입구의 버스 정류장 옆의 축대-??- 밑에는 어느새 저렇게 민들레가 고갤 들고 있습니다.
봄은... 소리도 없이 불쑥 와 있습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버스 타려다가 옆에 있는 양재천길로 내려갔습니다.
생각은... 두어 정거장 정도만 걷다가 버스 타고 올 생각이었는데 그만 필받아서 내처 양재동까지....
저렇게 버들강아지가 피어 있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버들강아지...
경기도에서부터 서울까지....
널럴하게 걸었더니 두어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우리동네 양재천과는 달리 한가하기 짝이 없는데다 차도 없고 신호등도 없으니 갖고 간 노트를 읽어가며 걸어도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전 날...
착한 제자가 와서 문득 필꽂혀서 산 김광석 전집-??-을 갖고 와서 장장 네시간 넘게 걸려 아이튠즈에 넣어 줬습니다. 그걸 아이폰에 넣어 들으면서 걸었는데... 이야~
김광석의 노래 중에 그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꽂혀서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해서 들으며 걷는데 갑자기 이유없이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오후 햇살이 비치는 한가한 길에서 나는 어깨를 들썩이거나 고개를 까닥거리거나 웅얼웅얼 따라불러도 뭐...볼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가끔 괜히 몸이 가벼워져서 사뿐사뿐 -켁!!!-빙글 돌아 뒤로 걷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야말로 범사가 다아 감사하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경쾌한 멜로디에 감수성 가득한 목소리로 노랠 부르는 김광석도 고맙고, 성능 좋은 MP3 기능을 탑재한 놀라운 기계를 개발해 낸 잡스씨-??-도 고맙고...
혹여 나도 세상 다 끝내고 저 세상에서 만나면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고 인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의 신념과 능력이 수많은 사람에게 많은 헤택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천국에 가 있지 않을까... 별 생각을 다 해봅니다. 왠지 난 별로 하는 것도 없고 해 놓은 일도 없는데 정말로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죽기 전에 내게도 뭔가 쓸모 있는 재주라는 게 있다면 좀 나눠주거나 남겨 놓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흠...
여하간
모처럼 해바라기를 해서 비타민 D가 합성이 되서인지 아니면 처음 먹어본 홍삼의 영향인지 기운 불끈!!!!입니다.
양재역까지 걸어와서 버스타고 돌아왔습니다. 이럭저럭하면 네 시간 가까이 걷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지금도 훌쩍 버스 타고 가서 다시 걷고 올까 생각 중입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으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