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애도 2013. 1. 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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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풀리고 해서 모처럼 길게 운동을 했다.

새로 산 신발을 신고 강남역을 거쳐 신사역도 지나고 가로수길을-예전에 비하면 정말 상전벽해!!- 걸어 신구 초등학교, 압구정 성당앞을 지나 압구정 동호대교 끝자락에 있는 맛있는 김밥집에 들러 김밥이랑 잔치 국수 한 그릇 먹고 다시 안세병원을 지나고 학동역을 거쳐 차병원 앞에서 버스를 탔다. 중간에 아름다운 가게에 들러 구경도 하고 가로수길에서 파는 악세사리도 살펴보느라 해찰은 했었지만 족히 두 시간 반은 걸었을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춥지만 않았다면 매일매일 나갔을 터인데 이번 추위는 추위도 문제지만 얼어붙은 길 때문에 당최 운신을 못하게 해서 스을 짜증이 났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 꼴을 중무장을 하고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보고 오거나 마른 길만 골라서 걷다가 햄버거 집에서 멍청하니 앉아 있다가 오기도 했다. 그렇게 꽝광 얼어붙은 길을 걷고 집에 들어오면 훈훈한 집이 새삼 좋다. 유달리 따뜻한 집이라 보일러 잠깐 돌려도 금방 따뜻해지는데 거기다 따뜻한 울 스웨터 걸치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거나 모니터를 들여다 보면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 뭐 세상 그닥 부러울 게 없다.

 다만 아직도 뭔가 미뤄두고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느낌은 있어서 이것저것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하여 오늘은 다시 바느질을 하려고 천을 마름질했다. 머리 비우고 하는 단순한 작업을 할 생각으로 사방 3.5Cm로 잔뜩 잘랐다. 멀쩡한 천 잘라서 잇는 일을 곰곰 생각하면 어이없다는 생각이 요즘은 종종 든다. 0.7Cm 시접까지 사방에 넣으면 천은 확 줄어들기도 하는데 어째 이짓을 하고 있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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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책방에 갔을 때 문득 깨달았는데 그닥 읽고 싶은 책이 없다는 것.

이것저것 들춰봐도 당최 마음이 동하는 책이 없다. 그럴 바에야 집에 있는 책이나 꼼꼼히 다시 읽자 하는 생각이 들고... 이런저런 수필집은 사실 십대 때 읽으면 딱 좋다. 뭐 이십대 때도 갠찮겠지.

어쩌면 나이 오십 쯤 되면 넘의 수필집을 읽을 게 아니라 내 수필집을 써내야 할 때라서 그런가... 이건 순전히 내 증상이지만 어째 그런 '사람들'이야기에 순수한 감동과 공감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흠...

지금은... 어쩌면 고전을 읽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 읽으려 했던 세계 문학들이 내게는 참 버겁고 지루했는데 그건 아마 영혼의 키가 자라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하여 내 열등감은 세계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것...

 아아, 하지만 서른 넘어 완역판의 셰익스피어의 비극집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경이를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릴 때 소년소녀 문학 전집으로 읽었던 스토리 위주의 이야기에 비해 대사에 담긴 삶과 일상의 성찰은 얼마나 놀라운가 말이다. 물론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수다스럽긴 하다.

 어쨌거나 이번 주 목표는 저 놀라운 남자, 희랍인 조르바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 것이다. N 카잔차키스의 작품이지만 사실 난, 성 프란치스코가 훨씬 감동적이었는데 그게 인물에 대한 감동보다 어떻게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나란히 가게 되었는가에 대해 내게는 대단히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느낀 충격만큼이나 컸다. -그때는 사실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있어서 내 나름 그것을 이해하고 결론 지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신화의 속성을 속속들이 갖춘 '문학'이라고 믿는다는... 그걸 만약 역사로 믿는다면 나는 신앙인이 됐을 것이다.-

 

 며칠 전에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문학을 읽고 싶은데 무얼 살까요? 데카메론 이런 거 읽을 만 한가요?

거럼, 좋은 책이다.

내용이 뭐예요?

-그걸 어찌 한 마디로 한단 말인가?-흠... 당대-중세를 지나 종교개혁일 일어나던 유럽- 사회에 대한 풍자나 뭐 그런 이야기... 

그리고 또 무슨 책을 읽을까요?

그리스인 조르바...-무슨 내용이예요? 하길레  그냥 사람 이야기다- 그리고 칼의 노래... 이건 문장이 좋다.

끊고 나서 무신 전쟁과 평화나 죄와벌 이런 걸 얘기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고전으로 불리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답하면서, 나야말로 고전을 읽어야겠군.. 했었다.

 

그리고 책이, 나란 인간에게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이나 이런 걸 형성하는 때는 지났다는 것도 문득 깨달았다.

하여 실용서 따위나 머리 가볍게 읽고 있는 것이리라.

 

어릴 땐 그야말로 훌륭한 교수님, 작가 이런 양반들이 쓴 수필집을 읽으며 그래, 이렇게 살아야겠군... 하는 결심도 종종 했었는데 말이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