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입원... 수술... 퇴원 3 에필로그

오애도 2012. 11. 27. 11:51

썰렁한 집안을 가장 빨리 따뜻하게 하는 방법은 보일러를 트는 것보다 부엌을 따뜻이 하는 것입니다.

대충 짐을 풀고 나가서 점심을 먹은 후에 오는 길에 수퍼에 들러 이것저것 시장을 봤습니다. 병원에서 보니까 죽순이라든가 우엉 같은 걸 주는 걸보니 섬유질을 많이 먹으라는 의미 같아서 우엉도 사고 두부도 사고 고구마도 사와서 저녁에 두부 넣고 된장찌개 끓여서 쌀밥이랑 먹었습니다. 식사는 지나친 기름기 빼고 섬유질과 당질 위주로 다아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쇠고기 사태도 한 근 사와서리 푸욱 끓여 무국을 한 솥 만들어 놨지요.

그렇게 이것저것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니까 비로소 집안에 훈기가 돌았습니다.

뭐 오른 쪽 뚫은데 -총 네군데를 뚫었다-가 좀 땡기긴 하지만 크게 못견디거나 불편하진 않았지요.  

그렇게 곰실곰실 움직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아무일 없이 살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반평생만에 처음으로 환자로써 병원 침대에 누웠다는 것이 이렇게 큰일-???-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올 해는 그야말로 아홉수에 삼재가 꽉 겹친 해입니다. 다분히 민속적이고-??- 주술적인 인간인 나는 올 해 내에 어떤 선불을 치루게 될까를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10년을 자알 문제없이 살아낸 것에 대한 후불일지도 모릅니다.

 아프면서 생각했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건 벌을 받는다거나 뭐 이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좋은 일이 겹쳐도 나는 늘 생각하니까...-- 어떤 부분에서 겸손하지 못했고 또 어떤 부분에서 감사함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것에서 미련을 떨고 있었는지, 무엇에 가당찮은 탐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유없이 사람들에 눈 흘기고 혹은 게으르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것들 중에 적어도 하나는 확실합니다. 건강에 미련을 떤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다행한 일이지요. 미련 떠는 불쌍한 중생 등짝 후려쳐서 니가 얼마나 건강한지, 그래서 얼마나 감사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또한 니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한큐에 깨닫게 해주시는 걸 보면 신은 분명 나를 사랑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하하하.

 하여 며칠 째, 탐구적인 인간인 나는 담낭과 담즙과 간과 콜레스테롤의 매커니즘에 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논문 써도 될 듯...- 나름 내린 결론은 조만간 서서히 체중은 내려갈 것이고 -담즙의 지방소화가 현저히 떨어졌으므로..- 특히나 복부비만이 줄어들 것입니다. -약간의 지방간이 나왔다고 했으니까 이건 내가 처리해야할 문제...- 결론은 어쩌면 이번을 기회로 고질적인 문제-과체중 혹은 비만-가 해결되는 놀라운 반전이 있을 겁니다. ㅋㅋ. 실재로 체중은 5킬로 정도 줄었지만 체지방으로 치면 순수하게 삼킬로 정도 빠졌겠지요.

나는...  함부로 살진 않았지만 어쩌면 게으르고 교만하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드러나지 않게 부린 교만함과 게으름을 끄집어내느라 신은 잠깐 다른 세상을 보여줬을지도...

 시험 끝나고 마음을 다하고 시간을 다 해 할 일이 없어서 잠시 공황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를 통증과 싸우느라 잊었었는데 다시 실실 무언가를 해야겠지요.

 

 병원에 있는 동안 찾아와주셨던 모든 좋은 친구들, 감사한 지인, 착한 얼라들... 화이팅 메세지 줬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기꺼이 수술하는 날 보호자를 자처해 새벽부터 찾아와 다음 날까지 있어준 소중한 제자이자 귀한 친구, 별거 아닌 수술이니까 괜찮다고 해도 수술하는 날 자신이 있어줘야 한다고 다시 찾아줬던 친구까지...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내어 놓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으며 사는 인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건 더 많이 내어 놓고 살으라는 신의 뜻인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