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애도 2012. 11. 12. 13:46

토욜 아침에 병원 다녀오고는 이젠 낫겠지... 했었다.

하여 낮에도 자알 보내고 저녁에는 한촌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왔다. 맵거나 짠 것, 밀가루 음식과 카페인 든 것 제외하고는 다아 먹어도 된다길레-때로는 그런 일반적 처방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나마 순한 것을 골라 먹으면서 잠깐 불안했었다. 물론 체하거나 장이 탈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밥 먹고 약도 충실히 먹었건만 식후 30분 약 먹을 때 이미 전조가 시작됐다.

어쨌거나 그래도 참았다. 뭐 몇 시간 참으면 개않으니까... 죽을 병은 아니니까... 달리 방법도 없으니까... 미련하게 밥 먹은 죄도 있으니까... 이러면서 네 시간은 버텼다. 네 시간을 버티면서 다섯 번 쯤 옷 차려입고 응급실 가기 위에 나섰다가 돌아오고 돌아오고를 했다. 결국... 비는 추적이는데 우산에 챙긴 것이라고는 혹시 몰라 핸드폰 충전기랑 아침에 처방받은 약봉지들고 택시 타고 한 시에 세브란스 응급실로 갔다.

여차저차 설명하고-나흘 씩이나 됐는데 이제 왔냐고 하더라는..-딴 거 말고 아픈 거나 어떻게 좀 해 주세요~ 했다. 결국 배 움켜쥐고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뭐 이런 걸 주욱 하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난생처음 링겔-??- 꽂고 진통제를 맞았다.

한 시간 지나도 통증이 그대로면 말씀 하세요... 하길레 정확히 한 시간 후, 아까보다 덜 아프긴 한데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진 않네요... 했더니 간호사가 웃으며, 환자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나아지는 경우도 있고 천천히 나아지는 경우도 있어요. 했다.

심전도 검사를 하러 왔길레 이건 왜 하는 거예요?

혹시 부정맥이나 이런 게 있나 보는 거예요

아...

옷 올리고 검사하는데 괜히 살찐 게 민망해서, 이게 살찐 사람은 더 안 나오지요?

간호사 웃으며

아뇨, 오히려 마른 사람이 더 잘 안 나와요...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근데 부정맥이 뭐예요?

심장이 쿵 쿵 쿵 쿵 뛰어야 하는데 쿵 쿵 쿵...쿵쿵 쿵 쿵 쿵... 쿵쿵 뛰는 거예요.

아...

 여하간 입은 안 아프니까 잘 떠들었다.  

뭐 결론은 염증도 없고 장이나 위도 멀쩡하고 다만 간수치가 약간 높게 나왔단다. 뭐 그거야 내리 사흘 진통제를 먹었고 약국에서 한약 비끄무레한 약도 사흘치나 먹었으니 높게 나올 수도 있겠지.... 뭐 이런 의사도 아닌 주제에 나름 결론까지 속으로 인정하고 우루사,복합 아루사루민 이런거 잔뜩 든 약 오일치 한 보따리 처방받아 추적추적 비가 오는데 걸어나와 큰길에서 택시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네시... 자알 자고 수업했다.

 

병원 갈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아침에 의사가 말한대로 결석인지 담석인지라면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입원을 해야 할테고 입원을 하게 되면 뭔가 이런저런 손길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 가서 입원하라고 하면 흠.... 속옷이나 뭐 이런 걸 챙겨가야하나 어쩌나... 만약 그냥 가서 입원하게 되면 이걸 누구한테 부탁하나 뭐이런... 마침 일요일이니까 지현이더러 잠깐 갔다 달라고 해야겠군 어쩌구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수술하면 이거 누가 와서 수발을 드나... 도 걱정이었다가 그래도 떠오르는 건 울엄니였다.

작년에 엄니 다리 다쳐서 입원해 계실 때 내가 교통 사고 났다고 했더니 엄니 첫 말씀이, 큰일 날 뻔 했네. 나도 이러고 있는디... 였었다. 그때 엄니는 다 늙은 딸래미 다쳐 누우면 당연히 당신이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일초 여유도 없이 드셨을 것이다.

만약 엄니가 오셨으면 역시 내가 입이 아픈 건 아니니까 다행이을 것이다. 하하하

 

어쨌거나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당연히 그 수발은 가족이 하는 것일 게다. 어릴 땐 당연히 부모일 터이고 어른이 되면 자식이거나 남편이 될 것이다. 난 당연히 자식도 남편도 없고 어린애도 아니니까 아프면 원 수발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고뇌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뭐 그렇다고 나란 인간이 천하에 못 된 인간이라서 주위 친구나 지인들이 하나도 없는 처지는 아니니까 뭐 집에 가서 속옷을 챙겨준다거나 다리가 부러져 입원하게 되면 입원수속 정도의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타인이라는 위치는 분명 가족들 보다는 어떤 의무감이나 부담감이나 염려에 있어서 훨씬 무게가 가벼운터라 호의를 베푸는 선행에 있어서도 덜 부담스럽겠지만 그건 정말 호의까지만이고 그 이상이 되면 나름 대책을 세워놓아야겠지.

흠... 열심히 돈 벌어 간병인을 세우는 것이 최고인가...

서너 시간 응급실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