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도 있다.
아침 나절에 거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부터가 이상했었다.
문득 버스 타고 훌쩍 속초나 강릉엘 다녀올까? 아니면 부산이라도... 속리산은 어떨까? 기차타고 춘천은? 이런 저런 생각에 강남, 남부, 동서울 터미널에 들어가 버스 시간표를 검색했었다. 그럴러면 지금 얼른 보따리를 실실 챙겨야겟는걸...
결국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만 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열 두시를 넘고 말았다. 하여 괜히 엊그제 사 온 우엉을 꺼내 꼼꼼히 조리고 단백질 파우더로 끼니를 때우겠다는 결심 따위는 집어던지고 흰 쌀밥을 지었다. 그리고는 엊그제 만들어 놓은 김치찜을 반찬 삼아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그러면서 내내 생각했다. 어째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어째서 짜증이라는 게 이렇게 솟을까??
난 솔직히 짜증내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짜증을 낸 경우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화내는 것과 짜증은 다르니까 당연히 화는 낸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모자라는 사람인게 분명하니까... 화를 내기 전 그러나 생각한다. 이것이 짜증이나 신경질은 아닌가...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었는가...
가끔 달거리가 가까워지는 날 쯤 일어나는 짜증을 나는 안다. 그럴 때는 걸어다니다 마주치는 간판도 어째 저렇게 유치하게 걸려 있을까 짜증이 나고 버스 안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대체 뭘 먹겠다고 이렇게 돌아다녀서 번잡하게 만들어? 하고 몰래 신경질을 낸다. 거리의 간판이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는 두리번두리번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하 내가 그날이 머지 않았구나... 단번에 깨닫는다. 그럼 스스로 자자 이제 그만.... 하고 자신을 다독인다.
그런데 오늘은 그건 아니다. 어쨌건 호르몬 변화에서 오는 것은 맞지만 이것은 더 장기적인 증세일 것이다. 괜히 옛날 드라마 보면서 그 유치한 설정에 부글부글 끓고, 시험공부 하고 간 조카 녀석이 시험 끝나고 끝내 전화 한 통화 안 한 것도 생각할수록 자꾸 괘씸해졌다. 안 하기로 해놓고 역시 난 또 오바스런 짓을 한 거야... 이딴 생각도 들고...
시내 나가면서 신호등 앞에서 노인네가 신호 무시하고 뻔뻔스럽게 빨간불일 때 건너는 걸 보고, 그러고 싶으신감요?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늙음이 뻔뻔함이나 무절제함이나 그악스런 이기심까지 용서될만큼 특권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늙음이 아름다우려면 그 세월만큼의 힘으로 절제하고 배려하고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동대문 시장 앞에서 또 너무나 당당히 모두들 기다리는데 건너는 여자 보면서 속으로, 그렇게 '나'만 생각하면 오히려 되는 게 없을걸... 거의 악담스런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괜히 경우 없는 학부형 생각까지 떠오르면서 부글부글 했다.
요즘 한동안 아침마다 손이 붓고 열이 심하게 나길레 이것도 갱년기 증세 중의 하나일까를 검색하다가 짜증과 우울과 불면증이 대표적 증상이라고 첫 줄에 나와 있는 것을 봤다.
결국 이건 그렇게 호르몬 변화에서 오는 것이다. 당연히 이걸 잘못 다스리면 혼자 늙어가며 히스테리 심한 여자가 될 수도 있겠지. 흠...
사실 어제까지는 굉장히 즐거웠었다. 토요일엔 친구들 모임도 있었고 수업도 없던 어제는 또 오래된 친구와 학부형이 인터뷰를 하러 와서 한참을 재밌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갔었다. 얼라들 가르치는 일은 실실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일이 자꾸 들어 온다. 이런 심리로 얼라들 가르치다가 애들한테 신경질과 짜증이나 내는 선생이 될지도...저기 서울 근교로 이사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여 다아 늦게 동대문 시장엘 다녀왔다. 퀼팅솜도 사고 단추며 프레임 따위를 사 왔다.
밖에 나가 오분도 안되서 우와~~ 집에 있는게 행복과 기쁨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웠다!!
다시 실실 바느질에 발동이 걸릴거 같아서 무섭다.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시장공부도 해야하는데 단순노동인 바느질에 발동 걸리면 안되는디...
어쨌거나 요새 며칠 죽어라 책만 읽고 '공부'는 안 한다.
그래도 이번 주는 생각해보니 즐거운 약속들이 여러개 잡혔다. 이야~
자자 릴렉~~스. 기운내자.
어쩌면 내일 새벽... 운동화 끈메고 속초행 버스에 몸을 실을 지도 모르겠다.
사족::: 거래가 잘 안 되어서 짜증이 났는가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왜냐면 오히려 짜증나서 홧김에-???!!!!- 매도를 하고 다른 걸 매수 했는데 매수
한 건 저점에 자알 들어갔고 매도한 건 더 떨어졌다. 물론, 시간외 거래 보니까 거의 상한가!!! 라 억
울하지만 아직 반이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