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단상
정월 대보름이라고 어제는 모처럼 이것저것 나물을 준비했다.
오곡밥에 아홉가지 나물을 먹는 것이라는데 아홉가지 나물은 그야말로 오바인것 같고 서너가지 묵나물을 하고 오곡밥을 지었다.
고사리는 북한산 말린 고사리를 사다가 며칠 전에 삶아 놨었다. 이거 품질이 좋다. 삼천원 주고 한 두름 사다가 삶아 물에 담가 놨다가 건져 들기름에 쌀뜨물 받아 넣고 뭉근히 볶아서 먹으면 맛있다. 나는 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먹다가 죽었다는 백이 숙제는 아니지만 고사리가 좋다. 반만 볶고 남은 것은 쇠고기 양지머리 사다가 육개장을 해먹으면 된다.
가지나물도 말린 것 사다가 삶아서 들기름에 볶고 설날 갖고 온 시래기도 삶아 담가 놨다가 된장에 들기름 멸치가루 넣고 조물조물 무쳐 살뜨물 자작하니 붓고 뭉근히 볶았다. 뭐 묵나물은 아니지만 무도 채썰어 들기름에 볶고 김도 구웠다. 난 들기름 없으면 볶은 나물 안 해 먹는다. 지난 번에 울엄니가 부쳐주신 냉이도 무칠까 하다가 대보름에 고추장 넣고 무치는 것이 아니라니까 그것은 그만뒀다.
한 봉지에 오백원 하는 잡곡 서너가지에 집에 있는 찹쌀로 간간하게 밥을 지어 오늘 종일 먹는다.
어릴 땐... 일 년에 한 번인데도 그 잡곡밥이 참 싫었다. 어른들은 귀한 음식이라고 여겼었던 거 같은데 우린 그냥 밥에 기름 맛이 밴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게 훨씬 맛있을 거 같았다.
열 나흩날 저녁엔 대부분 마을엔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솥에다 일부러 밥을 퍼 넣어 놨었다.
그날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밥을 훔치거나 일부러 얻으러 다녀도 흉이 아니어서 우린 친구들과 재미 삼아 밥 좀 줘유~~ 하고 돌아 다녔었다. 그리고는 오늘 밤을 새고 놀자... 결심하고 친구집 사랑방에 모여 있었지만 참~ 밤은 길어서 새우기는 커녕 시계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열 시도 되기 전에 잠들었을 것이다.
머리맡에는 이 집 저집에서 얻어 놓은 밥이 잔뜩 있었다.
남자애들 쥐불놀이 구경도 재밌었는데 통조림 깡통-정말 귀했다-을 몸통을 죽죽 그어 구멍을 내고 바닥은 못으로 구멍을 뚫은 다음 작게 자른 나뭇가지를 채운 후 불을 붙여 철사로 만든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앵앵 쇅쇅 소리가 나며 활활 타올랐다. 그것도 논 한가운데서...
굳이 기억을 더듬어 몇 살 때일까를 생각해보면 쥐불놀이는 여섯 살이나 일곱 살 무렵의 기억이고 밥 얻으러 다니던 때는 아홉 살 무렵인 듯....
이렇게 나이를 기억하는 것은 시골에서 이사를 몇 번 다녔는데 학교 들어간 집은 어디고 유치원 다니던 집은 어디고 또 몇 학년 때 좀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갔었다는 분절 단위의 기억 때문이다.
어쨌거나 나일 먹어 당연히 식성이나 취향이 변하는 터라 나는 혼자서 곰실곰실 나물을 만들고 오곡밥을 지어 밍밍해 뵈는 나물을 먹고 있자면 참 격세지감이라고 해야할지 세월의 뒤안길이라고 해야할 지...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의 길이를 가늠케 한다.
어제 수업하러 온 알라한테 먹어보라 했더니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주말엔 종로에 나갔다가 광장시장엘 갔었다. 옷 만드는 얼라랑 만나서 칼국수 한 그릇 먹고 녹두전 사다가 저녁에 온 고등학교 졸업생들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야그를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 나는 늙는 것이다.
열 두살 무렵에 만났던 아이들이 이제 스무살 성인이 되어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걸 보면서 시간은 확실히 나이에 따라 변화의 폭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같은 사람에게 십년은 그닥 크게 변할 게 없지만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가는 때의 폭은 확실이 크고 넓다.
이젠 제법 어른이 되서 사회과학 서적도 읽고 시사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걸 보면서 많은 것들은 때가 되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또 깨닫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성장하는데 어른인 '나'는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우고 익히고 깨닫는데 태만하면 단숨에 션찮은 어른으로 전락하게 되겠지. 흠...
나는 '선생'이 아니라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제법 혜안으로 봤을 때도 나는 정말 '훌륭한 선생' '괜찮은 어른'일 수 있을까?
오늘... 보름달 보기는 그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