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초라

일상에서 건져내는 사랑의 기쁨과 삶의 슬픔...영화<8월의 크리스마스>

오애도 2010. 10. 30. 08:26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은 분명 같은 책을 여러번 읽을 때의 감흥과 비슷합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그 이야기를 이루는 세세한 것들을 미처 볼 여유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 볼 때 놓친 것들을 찬찬히 살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책을 여러번 읽을 때 분명 자간과 행간에서 울리는 수많은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 울림은 마음과 생각의 울림들을 만들어내지요.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는 그렇게 한 권의 책에서 많은 울림들을 읽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새벽에 깨어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봤습니다. 세 번째인가 네번 째인가....

영화 보는 일에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 됐지만 그래도 걸리면 푸욱 빠져서 보긴 합니다.

8월의... 는 사실 극장에서 굳이 상영하지 않아도 될 듯 싶은 영화입니다.

극장에 가는 일이라는 게 집에서 DVD나 비디오로 보는 것과는 다른 다분이 비일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그 행위 안에는 작은 화면에서 느낄 수 없는 대단한 장경이나 몰입에의 소망같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잘 찍은 풍경이나 스릴거리는 감정이나 스펙터클한 액션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런데 8월의....는 전혀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저 너무나 평범한 화면과 일상적인 풍경안에서 대단히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지요. 그저 조용조용이 배우들은 움직이고 화면은 비범한 평범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명이 놀라우리만치 자연적이어서 그 일상성은 훨씬 두드러집니다. 참신할 것도 없고 즐거울 것도 없는 사진관의 젊은이와 매일매일이 비슷하고 지루한 예쁜 주차단속원의 보일듯 말 듯한 사랑이야기를 뼈대로 삶의 슬픔과 환희와 절망을 보여줍니다.

 남자 주인공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지요. 그 젊은 나이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 평범한 남자의 일상이 오늘은 문득 슬퍼서 소리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봤습니다.

 사진의 속성이 찰나를 잡아 영원히 정지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사진관집 청년은 아마 그렇게 찰나를 잡아내면서 그에게 다가왔던 사랑을 영원히 정지시키는 방법을 알아냈는 지도 모르지요. 하여 사랑인 줄 알면서 내색하지 않고 마지막 유리창 너머로 그녀의 실루엣을 만지는 모습은 그렇게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주는 슬픔과 절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죽음이 예정돼 있지만 그것에 대해 큰소리로 떠들지도 절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듯 그려냅니다. 죽음이 초점이 아니라 그 마지막에 찾아온 사랑이 소리치지 않아도 얼마나 환희로우며 비명지르지 않아도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진관에 찾아와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일일한 에피소드조차 삶에 대한 잔잔한 슬픔과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스스로 찍은 영정사진 속의 주인공이 가슴 저려서 아침에 퉁퉁 눈이 부었습니다.

 

 만약 영화를 한 번만 보고 끝냈다면, 조용히 들어가 이불을 쓰고 소리 안 내고 우는 장면이나 비디오 조작을 아버지한테 가르쳐주면서 화내는 장면이나 그림과 글로써 그것을 끝내 써놓는 장면이나 어릴 때 친구들과 감자를 구워 먹고 모두들 사진관에 와서 단체 사진을 찍는 장면들이 어째 그렇게 슬픈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나에게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살아지는 날들이 그렇게 마지막 날일 수밖에 없다면 하찮은 설거지조차 보석같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