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傳을 보다
티비는 많은 시간 켜놓고 있지만 일부러 찾아서 보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자기 전에 이것저것 돌리다 주식강좌같은 게 걸리면 틀어놓고 사실 책읽다가 잠이 드는 것이 보통이고 아침엔 무의식적으로 틀긴 하지만 켜는 그 순간 나와서 작은 방으로 들어온다. 그럼 저 혼자 저쪽에서 떠들고 있다가 잠시 후에 꺼버리니까 사실 보는 시간은 극히 적은데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웹사이트의 머릿기사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닐도 안 나오고 또 이전의 NGC 채널의 중간 광고 시간에 넌덜머리가 나서 덧정이 없어진지도 오래다.
오늘 문득 역시나 지나가다가 뭔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한 MBC스페셜 할머니傳...
어느 순간부터 화면에서 순전한 카메라 웍이나 샵질 없는 풍경을 보면 채널 돌리기를 멈추게 된다. 인간극장식의 다큐를 가장한 적당한 연출은 더 이상 다큐의 미덕도 연출의 세련됨도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할머니傳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할머니들 이야기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품고 있는 그네들의 삶을 절대로 구구절절 길게 늘이지 않고 그저 일상의 풍경을 보이는대로 찍어놓았다. 그렇게 각기 다른 네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로 웃음짓고 절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거기 비친 할머니들의 모습은 바로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쭈글쭈글 주름살 투성이고 세련되거나 꾸미지도 않았지만 그네들이 이젠 거울 앞에 선 누이같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얼굴에 남아 있는 삶에 대한 진심어린 자세 때문이리라.
사람들이 좋다.
그것도 나이 먹은 사람들이.... 많이 배우고 세련되고 멋있는 사람들보다 그렇게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아름답고 매력있고 감동적이다.
누가 감히 그네들에게 오늘 날 양성평등따위의 인위적인 잣대로 행복의 가치를 잴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네들은 결코 '여자'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온 것이고 그 신산했던 삶조차 끌어안고 토닥이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잘 살고 있다는 것, 성공한 삶을 산다는 것도 역시나 객관적이지 않다.
세상의 잣대는 어찌보면 대단히 편협해서 그 자체의 딜레마를 가늠해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