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오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터미날 지하상가에 들렀습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부탁받은 화병을 하나 사고 행운목 두어그루도 사고 노란 장미 한다발을 사왔습니다. 생긴거완 다르게-??- 꽃을 좋아하는데 그야말로 게을러서 사는 일을 잘 못할 뿐이지요.
포장하면 삼만원이던가 하고 그냥 한 다발은 만 오천원인데 2천원 깎아서 만 삼천원을 줬습니다.
오래 전에 쓴 글에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삼천원에 사다 화병에 꽂아 놓고 행복해 하던 글이 있습니다. 거의 십오년은 되지 않았나 싶은데 피씨 통신 영화 동호회에 올렸었지요.
그때 말이, 삼천원어치 꽃을 사와서 만원어치 행복하면 남는 장사라고 했었는데 만 삼천원 주고 사와서 삼만원어치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보라색도 분홍색도 아닌 특이한 색깔의 장미를 사 봐야겠습니다.
나는 장식이나 치장 따위를 하는 것보다 저렇게 온전히 꽃의 모양을 한 게 좋습니다. 며칠 전에 스승의 날이라고 받았던 카네이션도 그렇고 요샌 꽃보다 바구니나 리본이나 장식이 더 화려해서 당최 꽃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다대하게 지장이 있습니다.
어쨌든 내가 '나'를 위해 한 다발의 장미를 사는 일이 망설여지지 않을만큼 내 삶은 내맘대로 해도 좋은 '내 것' 입니다.
레이지보이 리클라이너를 사고 싶어서 작년부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사실, 나중에라도 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놓을 데가 없는게 가장 큰 이유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작은 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책을 읽고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수학문제나 영어공부를 하는데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차선책으로 편안한 중역의자-?? 이름이 그랬음-을 사려는데 이런!!!!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생일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뒷목까지 편안하게 받쳐주는데다 견고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저 의자에 앉아서는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뜨개질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퀼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비스듬이 기대어 인터넷으로 주식거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ㅋㅋ
엊그제 도착해서리 석유냄새도 아닌 것이 염료 냄새도 아닌 것이 골치를 아프게 하긴 하지만 이야~~ 참 좋습니다. 영어를 술술 말하게 되거나 수학문제를 샤샥 풀어내거나 혹은 응모용 소설이라도 써내면 그것은 순전히 의자 덕입니다. 하하하.
리클라이너는 나중에 더 늙어 시골에 집 지으면 크고 넓은 창문 가에 사서 놔야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지리산 자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산은 동네 뒷산-??- 수준이었고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보자면 이건 또 제법 굴곡진 산이었는데 사실 나머지 길은 나 어릴 때 줄창 헤매고 다니던 들길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때 그길이 훨씬 '자연' 그대로였다는...
어느 순간 고즈넉한 시골길이나 산밑의 한가로운 길들을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이던데 흠...
어릴 때 나처럼 시골에서 자랐거나 어른이 되어서도 시골엘 가거나 아니면 혼자 여행이라도 가면 주구장창 걸어다니는 시골길이랑 같습니다.
물론 아스팔트 키드로 자란 사람들한테는 새로운 경험이 되기도 하겠지만 글쎄요...
한참 전에 두어달 가까이 진안의 산골 마을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굽이 굽이 둘레둘레 차를 타고 갔던 마을엔 전쟁이 나도 세상과 상관없이 조용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일 때문에 같이 갔던 사람들 두고 나는 몇시간이고 혼자서 컴컴한 동네를 돌았었습니다. 그 한없이 고즈넉한 시골 동네의 어둠에 잠긴 실루엣은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자란 시골은 거기에 비하면 꽤 도시스러운-??-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 다니면서 어째서 그때 그 기억이 자꾸 떠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얐든 소문이든 홍보든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했던 게,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평일날 청계산의 청계골 쪽 등산로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다섯 배는 많았으니까요...
여하간... 친구들과의 여행은 즐거웠지만 여행지의 감흥은 화들짝 가슴 밑바닥까지 뒤흔들어 놓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하여 겨우 찍은 사진이라는 게 감자랑 마늘이 심겨져 있는 밭인데 저런 시골 마을의 정겨움이 어쩌면 둘레길의 본질일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성하던 사람들을 보며-우리를 포함해서- 대체 어떤 것이 진정한 자연 친화의 마음인지 궁금해졌다는...
비 온 뒤의 논둑길을 맨발로 걸을 때 발목을 간지르던 여린 풀들과 굴다리 지나 찔레순과 삘기 뽑으러 다녔던 산밑의 밭둑에 혼자 피었던 나리꽃이며 싸리꽃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나는 홀로 어릴 때 그런 곳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버섯을 따러 먼 산을 돌아다녔고 산딸기를 따러 학교 끝나고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헤매던 산들... 산넘어 뒷산 골짜기에 현기증 나도록 피어있던 진달래의 붉은 색...
지금은 더 좋다고 소문나 있고 더 유명한 곳, 어디에서도 결코 보지 못했던 그 선명한 감동과 기쁨... 꽃을 보고도 가슴 벅차게 기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이번 여행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민박집의 식사였습니다. 민박집 이름이... 하늘하래 민박집이던가... 가물가물...
저것은 아침에 먹은 것이고 저녁엔 반찬 몇가지가 다르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참나무 장작으로 초벌구이 해서 먹었던 지리산 흙돼지 삼겹살과 쥔장 내외의 선량하고 순박한 맘이 가장 감동적이었다는.... 때로 사람이 가장 아름다워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때로 사람이 가장 추해서 맘을 다치게도 하지요...
며칠동안 최악의 컨디션이어서 코밑 멍울 낫기 시작했던 찰라에 입안이 네 군데나 헐었습니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아프기도 처음입니다. 음식 먹을 때마다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아픈 걸 참아가며 자알 다녔습니다.
어제는 뙤약볕에 다섯시간을 걸어 그나마 목적을 자알 달성했는데-초반에 나는 컨디션이 엉망이라 산밑으로 굴러떨어질 뻔 했었다- 둘째 날인 오늘 아침에 비바람 몰아치는 들길 걷다가 결국 포기하고 일찍 돌아왔습니다. 비바람 맞으며 걷는데 자꾸 울엄니 생각이 나서 혼자 킬킬 웃었습니다. 옛날 시골집 마루 끝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논둑길 걷고 있는 사람들 보면 울엄니 분명, 저 사람들이 미쳤내벼~~ 하셨을 테니까요.
입 아픈거빼면-사실 무지하게 고통스럽다.-다리도 안 아프고 마알짱 합니다.
계획보다 일찍 서울로 돌아와 터미날 상가를 돌고 꽃 한다발을 사고 택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거리는 제법 한가했고 시간 잘못 알고 수업하러 온 녀석이 있어서 돌려보내고, 또 한 아이가 막 뽑아낸 쑥절편이랑 그냥 절편 한 아름을 들고 왔습니다. 김 싸먹으면 맛있다는...
여행은 떠날 때도 좋지만 돌아올 때도 두 배 쯤 즐겁습니다. 평화롭고 따뜻한 집안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안도감... 하룻밤 비워놓은 집안은 잠깐 낯설지만 그것도 잠시, 온전히 내것임을 문득 깨닫습니다.
비타민 자알 챙겨먹고 푸욱 일찍 자도록 해보야겠습니다. 차안에서 잠깐 잤는데 잠이 쉽게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번 스승의 날엔 제법 카드며 편지들을 받았습니다. 선물도 있었지만 그런 거 없이 편지나 카드 한 장이 주는 감동은 대단히 큽니다. 한 줄 글을 쓸 때 사람들은 분명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쓸 수 없습니다.
글이라는 게 마음의 그대로 드러내는 속성이 있어서 비뚤한 글씨에 담겨 있는 반듯한 마음과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날, 지금은 그만뒀지만 범강장달이 같은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몇명 와서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기도 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꼭 잘키운 아들들 같았습니다. 하하.
내일은 잔뜩 수업이 있고 다음 주도 줄줄이 이런저런 계획 꽈악입니다.
어쨌든,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만큼이면 됩니다.
장미꽃이 차암 예쁩니다!!!!!!!!
입도 아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