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사는 게 별거인가... 그저 걷는 것...

오애도 2010. 5. 15. 02:42

어제는 결심대로 청계산에 가서 잔뜩 뜨개질을 하고 왔습니다. 도시락을 싸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뜨건 물을 보온병에 담고 믹스 커피와 찬물과 카메라, 안경 따위를 들고가서는 세시간 쯤 있다가 산엔 안 오르고 돌아왔습니다. 대신 집에까지 걸어왔습니다. 널럴하게 밥도 잔뜩 먹었겠다 날씨도 좋아서 바람은 설렁거리고 해는 지기 시작해서 덥지도 않았지요. 집에 도착하고 보니 세 시간 좀 못되게 걸렸습니다.

 청계골 입구로 내려와 원터골을 지나고 샘마을도 지나고 화원들이 주욱 늘어선 좁은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로 마트도 지나고 현대 기아차 본사도 지나고 양재 꽃시장, 내가 다녔던 학원 근처와 늘 타고 내리던 버스 정류장, 그리고 AT센타, 양재 시민의 숲, 양재천 그리고 양재역을 지나 걷고 걸었습니다. 오는 길에 책방에 들러 무거운 자습서 두 권도 샀으니까 오지게 운동은 했습니다.

  

 오후의 산길엔 지나가는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저렇게 스카프를 깔고 한참을 뜨개질을 했습니다.

 

 

참 맛있었던 제육볶음 도시락... 원래 친구랑 가기로 했다가 캔슬 되서리.... 나 혼자 자알 먹고 왔다는...

 

 

두릅 데친 것과 상추 쌈도...

무엇인들 안 맛있었을까??!!!!

 

 

정말 한참만에 본 꽃 잔뜩 핀 소나무... 어릴 때 송화가루 털어서 입에 넣었던 선명한 기억!!

 

 

 

보면서 내내, 걸으면서 내내 한참이나 생각해도 이름이 생각 안 나던 잡초... 쇠뜨기던가..

여하간 초록의 풍성한 머릿결 같아서, 아니 싱그런 초록의 느낌이 좋아서 그저 찍었습니다.

어릴 때  친구네 집 소 꼴 베러 가는데 따라갔다가 저풀만 잔뜩 뜯어갔더니 친구 아버지가 저 풀 먹으면 소가 설사한다고 얘기했던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특별히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것들의 창궐이 반드시 성가시고 해악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저다지 놀라운 생명력과 싱그러움으로 잠시 눈을 즐겁게 하는 미덕도 있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자연의 가치를 매기는 건방은 언제 쯤 그만두게 될까요. 사람이나 풀이나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인데 인간만이 한없이 오만하게 이해를 따지고 득실을 따지고 유용과 무용이라는 지극히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길가에 주욱 늘어선 화원들... 키작은 꽃이며 야채나 채소 모종들을 팔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완두콩 모종... 저 꽃들을 밀어내며 완두콩 열매가 맺습니다. 어리고 여린 완두콩은 달착지근하고 맛있습니다. 좀 굵어지면 비린 맛이 나지요. 완두콩 열린 모습 참 예쁩니다.

늘 완두콩 넝쿨을 보고 있자면 어릴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다섯 개의 완두콩이라는 동화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던... 저거 지나면 바로 하나로 마트입니다. ㅋ

 

 

 

 

때로 아기자기하고 때로 넓직하지만 걷는 사람들은 드문 대로변을 걸으면서 뭐 인생이란게 혹은 삶이라는게 이렇게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정 하나, 혹은 과정의 순간순간이 충만하게 즐거우면 되는 것이지 뭐 하나 매달릴 것도 없고 아등바등 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누구하나 아는 척 할 필요도 없는지라  길가의 옷가게 쇼윈도를 들여다 보다가... 보도블럭의 줄에 맞춰 사뿐사뿐 모델 워킹을-??-  하면서 들릴듯 말듯 늙은 군인의 노래나 사노라면 따위를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돌아와서 결국은 잘못 뜬 것 풀어서 죄 다시 떴다는... 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