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법정 스님 입적 소식이 포털사이트의 홈을 메우고 있습니다.
80년대 내 젊은 날의 한 때를 그 분의 책읽기에 몰두한 적이 있었습니다. 10월이나 11월 늦은 가을 밤에 물소리 바람소리나 텅빈 충만 같은 책을 읽고 있자면 내 스무살 무렵의 날선 감성 주위로 맑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요. 그 때 몇 해 동안의 늦가을 밤은 그렇게 법정 스님과 황진이와 보냈습니다.
그 때 나는 분명 서툰 치기나 시퍼렇게 날 선 미숙한 진지함으로 세속의 집착과 가치에 대해 시니컬하게 마주 보고 있을 때였으니까 분명 나름으로 대단히 진지하게 열광하고 있었지요.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그렇게 늦가을 그 분의 책을 읽었더랬습니다.
사람은 어쩌면 스무살 때까지 배우고 형성된 것으로 나머지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배운 것은 남은 삶동안 천천히 말하면서 산다고.... 대학 때 젊은 교수님이 말했을 때 나는 정말 마음 저 속에서 깊은 공감을 했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그말을 믿다 못해 확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것들은 분명 지식은 얕을 것이고 감성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을 것이며 이성은 얼어붙을 지경으로 굳어 있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일 먹으면서 지식은 깊어지고 넓어지며, 감성은 무디어지되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이성은 녹아 흐르되 썩거나 탁해지지 않게 조심하되 단련하며 살아가는 것일 겝니다.
그 때 나는 어리석음과 게으름과 탐욕을 경계하며 살것이라고... 세속의 얕은 이익에 몰두하는 것이나 경박한 유행이나 부박한 인간성 따위에 잠식당하지 않고 살자.... 어쩌구 하는 것을 일기에 적어 놓기도 했었는데 참 가상한 결심이지만 애매모호하고 현학적인 체 하며 다분이 치기어린 건방이라는 것을 지금은 자알 깨닫고 있습니다.
세월은 무심하고 시간은 빠릅니다. 그렇게 한 시대가 가는 것이겠지요.
앞의 세대가 퇴장하기 시작한 지 꽤 됐고 분명 우리 세대가 무대의 중앙에 서 있는 때인데 어쩌자고 나는 변두리만 소요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세상과 떨어져 있었으되 세상의 중심에서 나즈막하되 강인한 울림을 보내셨던 그분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그때 분명 나를 형성하는데 다대하게 영향을 미쳤던 책들입니다.
또 다른 책, '말과 沈默'은 그당시 미국 들어갔던 분에게 빌려주고 못 돌려받았는데 늘 생각난다는...
왜냐하면 사서 읽기도 전에 빌려줬거든요. 그때 그 분이 나더러 나중에 이상해질거라고 했다는데...
정말 이상해진 거 맞습니다.
산 날짜를 보니 거의 25년이 넘었네요. 마지막에 있는게 그나마 14년 전에 샀다는...
참 무심한 세월입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