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좋다.
밀려오는 적군 쳐부수듯 여기저기 박혀 있던 퀼트 팩키지를 꺼내서 해치우는 중이다.
트리와 토끼는 만들었고, 주말 틈틈히 바느질을 했다. 열심히 산에 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면서 바느질을 하다 보니 후닥닥 하루 사이에 만들게 되지는 않았지만 제법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창문을 열어놓고 푸르디 푸른 하늘을 가끔 올려다보며 바느질을 하고 있자면 말할 수 없이 평화롭고 고즈넉한 공기가 주위를 떠 다닌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삶은 계란을 하나 까 먹고 어느땐 설렁탕면 하나를 끓여 점심겸 저녁으로 먹기도 한다.
그렇게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잎을 흔드는 행운목의 움직임에 슬쩍슬쩍 눈길을 주면서 바느질을 하다가 보면 내집에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이 창문 앞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가끔 선생님~~ 뭐하세요?? 하면서 다른 데서 공부하고 돌아가는 녀석들이 아는 척을 하기도 한다.
햇살 좋은 가을 날이다.
피겨 토깽이 파우치다. 고유네임은 연아 파우치인데 아마 김연아 선수 이름을 딴듯...
분홍색 아즈미노 천에 스케이트 타는 토깽이 아플리케만 딱!!! 있다.
이건 아플리케 하기 위해 그려놓고 잘라 놓은 것들... 작은 것은 손톱의 반 만한 것도 있다.
잘라놓은 것들을 저렇게 하나하나 붙인다. 공그르기로... 본에 대고 다림질로 누르라는데 난 배울 때 그렇게 배우질 않아서 그냥 섬세한 손톱끝으로 살살 접어가며 공그르기를 한다. 순서 틀리면 죽음이다.
제법 스케이트 타는 토깽이 모습이...
거의 그림은 완성...
퀼팅까지 마쳤다. 퀼팅선 그리느라 머리에 쥐 나는 줄 알았다. 결국은 본에 나온 것 다아 오려서 그대로 그렸는데 두 번 만들 때는 위치 찾아 그리는 게 불가능할지도...
그리고 드디어 완성!!!!!!
내부 바이어스 하고 입구 바이어스 하고 지퍼 달고 지퍼 고리 만들어 끼웠다. 2온스짜리 소품 솜을 이용했더니 빠닥빠닥 힘있는데 밑이 좁아서 서 있질 않는다. 이런!!!
이건 뒷태...
원단이 고급스럽거나 화려할 경우 지나치게 요란한 디테일은 자칫 천박해진다. 옷도 그렇고....
거기에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방법은 바로 섬세하고 정성어린 퀼팅....
손바느질의 매력은 만지면 제법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편안하고 포근하다는 것이다.
빈티지 호보 백...
화려한 린넨천에 퀼팅만 했다. 의외로 넉넉한 싸이즈.... 만들어 놓고보면 이쁘다.
그건 아마 사람의 정성어린 마음이란 게 담겨서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작년 여름에 산 린넨 바지 입을 때 매면 멋질 것이다.
터키 갔다오면서 아이가 갖다준 열쇠고리에서 떼어낸 것인데 질투를 반사한대나 어쩐대나...
지성과 몸매와 미모와 인간성때문에 다대한 질투를 받아내고 있는 나한테 꼭 필요한 것이라 달았다. 하하하하. ㅋㅋㅋㅋㅋ
합동 사진...
아직도 바느질 할 거리는 제법 있지만 조만간 다아 끝낼 것이다.
이게 제법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꼭 잔뜩 어질러진 부엌이나 방안을 하나 둘 씩 치워나가면서 느끼는 개운함 하고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