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눈부시게 푸르른 가을 입구에서...

오애도 2008. 8. 21. 16:42

 

모처럼 간 청계산...

근 한달 째 산행을 쉬었다가 오늘 갔었다.

바람은 맑았고, 햇살은 빛났으며, 공기는 투명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봤던 푸른 하늘... 그저 드리워진 코발트불루 빛의 하늘이었다. 공기는 투명해서 먼 곳까지 거칠 것 없이 보였다. - 셧터를 누르는 순간 불쑥 등장한 이름 모를 등장인물.... -

 

 

 

수퍼 매크로 기능 시험용 꽃...

이름은 모른다. 찾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름을 안다고 해서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름 모를 꽃들이나 이름 아는 달개비며 쑥부쟁이 따위와도 제법 만났지만 애정의 강도는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리 사진 자알 찍어 예쁘게 나와도 역시 꽃은 거기 그 자리에 이름 모를 풀들과 어울워져 저 혼자 피어나 존재를 자랑삼지 않을 때가 예쁘다. 소박함과 겸손함과 고즈넉함을 배경삼아 그저 그렇게 피었다가 질 수 밖에 없는 숙명... 사진은 사진일 뿐, 네가 거기 있었단다.  

 

 

 

우리가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은 밀버섯...

아주 맛있는 버섯이다. 살짝 데쳐 감자와 쇠고기와 양파를 함께 넣고 고추장 찌개를 끓여 먹으면 맛있다.

아니 어릴 때 먹었던 기억은 감자와 함께 찌개를 끓여 먹었었다. 쇠고기는 비쌌으니까... 쫄깃쫄깃하고 맛있는 버섯인데 생버섯을 채취할 때 풍기는 향내를 나는 글로도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저렇게 어린 버섯이 주는 감동...

나 시골의 산 밑에서 자라 함부로 산이 너무 좋구나 하는 호들갑 없이 산과 호흡하며 살았다는 걸 늘 실감하게 하는 버섯이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나가면 저것들은 불쑥 자라 있거나  새로 돋아 있었다. 노란 꾀꼬리 버섯이나 가끔 뱀이 우글거리는 구멍이 있던 근처의 싸리버섯과 함께...

어느 가을 날 엄니 따라 높은 산에 도토리 주우러 갔다가 울 오라버니 버섯... 하길레 돌아봤더니 거기 풍성하게 피어있던 느타리 버섯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자연적으로 거꾸러진 오리나무 둥치에서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는데 그 천연 버섯의 향내는 지금은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다. 울엄니는 그것을 가다발 버섯이라고 했다.

어그적어그적 산 못타는 나는 여섯 살 무렵에 엄니의 지청구를 들어가며 그 까마득한 숲을 헤치고 다녔다.

 

며칠전 울엄니와 함께 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푸른 초원으로 덮인 산길을 나는 앞서거니 오르고 있었고 어느 순간 꼭대기였는데 거긴 푸른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깨고 나서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는데 해몽을 해 보면 어딘가 높은 자리로 영전을 하거나 오랫동안 바라는 일이 이루어져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데 흠.... 내 주제에 무슨....... ^^;;

 

 

 

요즘 새로 다니는 청계골 입구에 있는 돌로 된 기둥-??- 이다.

가끔 아무 생각없이 저걸 보고 있자면 하얀 드레스 입은 여자가 나타나고 잘 생긴 남자가 불쑥 뒤에서 나타나 보기좋은 장면을 연출하는 광고의 배경이 되는 상상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나무로 엮은 다리가 있고, 푸른 이끼가 낀 저 돌기둥은 무엇이었을까?

 

 

푸른 계곡물... 청계골... 햇살 비낀 풀들은 저렇게 하얗게 빛났다.

 

 

모처럼 산행에 제법 넉아웃이 됐다. 한동안 입 아프다는 핑계로 운동과 담 쌓고 지냈는데 그것에 비하면 즐거운 산행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깨끗이 정리해 놓은 집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잠시 설레는 것처럼 그렇게 가을의 문턱을 넘으며 나는 설렌다. 거기 어디 쯤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싸놓은 선물 상자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