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 인간의 변명
며칠 전에 병원엘 들러 체성분 검사를 했었다.
비만도며 기초대사량 따위를 재는 것인데 이게 늘 불가사의다.
비만도야 당연히 중증 비만이 나왔고, 근육량은 다리가 표준이하이고 팔은 표준이라고 나왔다. 작년 내에 산에 다닌 것은 차치하고라도 올해 들어 나름 열심히 산에 다니고 양재천도 두어시간씩 한달이면 스무날 이상을 했다. 근육량을 늘려야 기초대사량이 늘어날테니까 운동 말고 나름 순수 단백질도 먹었다. 저지방 우유, 치즈, 닭고기, 계란 두어개 씩, 유청 단백, 커클랜드 저지방 햄도 꽤나 먹어댔는데 아뿔싸!!! 근육량은 겨우 표준이었고 -작년에 검사할 때도 근육량 표준이었다- 세상에 기초대사량이 1300칼로리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157센치의 키에 팔십킬로그램 가까운 체중으로는 말도 안되는 숫자다. -표준, 1577~1845-., 밥 한공기가 겨우 300칼로리니까 박하게 잡아도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에 밥 한공기는 덜 먹어야 간신히 보통 사람들 수준이 된다는 얘기다. 아니면 밥 두공기를.... 그렇다고 내가 하루에 밥을 다섯공기 씩 혹은 한끼에 두어공기 씩 먹어대는 인간도 아닌데 밥 한공기를 줄인다면 -대충 두 끼 정도를 먹으니까- 밥 한공기를 세 끼에 나눠 먹고 칼로리 높지 않은 반찬이나 근근히 먹으며 운동 빡시게 해야 살이 내린다는 결론이다. 아니면 아예 밥을 굶거나.... 그렇게 되면 분명 대사량은 더 낮아져서 아에 에너지 소모를 안 하고 축적만 하게 되겠지...
그렇다고 간식을 즐기느냐... 이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일년이 넘어가 결국 버리는 일이 허다하고, 초콜릿이나 사탕 이런 건 먹을것으로도 안보며서 종종 개미들 차지가 된다. 과자 부스러기 따위도 나 먹자고 돈 주고 산 기억도 까마득하다.
낮에 침대에 퍼질러 누워있는 짓도 안 하고, 열 시간 이상을 늘어지게 자는 짓도 못한다. 그럼 어째서 이렇게 나른하게 기초대사량이 한없이 낮은가... 물론 별로 잔걸음질은 안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대부분이고, 한 번 앉아 있으면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앉아 있는 것은 유도 아니다. 저녁에 종종 술을 마시지만 사실 이것도 안주를 폭식을 하거나 기름진 걸 먹어대는 것도 아니다. 끽해야 오징어 구이나 계란 찜 따위가 전부인데 대체 고 따위도 안 먹고 살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뭐 살을 빼기 위해서는 초 절식을 하고 술 끊고 몸이 망가지도록 운동하면 안 될 것도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년에 제법 저 지경이 되도록 했었던 것 같다. 산엘 일주일에 많으면 여섯번을 갔으니까... 칠십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을 끌고 매일 산엘 오른다는 것은 운동을 넘어서 노동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여 곰공 생각해 결론은 지나치게 나란 인간이 여성적인 체질이란 결론이 나왔다. 기초대사량이 높으려면 근육량이 늘어야 하는데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 하는 것이고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은 근육생성을 방해한다. 내가 유달리 근력에 약한 것도 아마 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란 인간의 몸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여성호르몬 과다형이다. 우선 뼈가 가늘고, 그래서 손목 발목, 목까지 얇다. 어깨가 좁고, 얼굴이 작으며,-이것 때문에 잘만 가리면 80킬로그램으로는 절대로 안 본다는....- 가슴이 크고, 머리칼이 얇고 숱이 없다. 피부는 과하게 말랑말랑하고 얇으며 결이 고운 형이다. 골격과 머리칼이나 털-이게 많으면 남성 호르몬이 많단다-, 피부 따위를 보면 분명 남자들, 혹은 남성적인 여자들은 확연히 다르다.
여하간 단백질 먹어 근육생기는 것도 어렵고, 근육운동 빡시게 해서 근육 생기게 하려면 테스토스테론하고 에스트로겐 하고의 싸움질 때문에 결국 내 몸은 축날 것이다. 하여 잠깐 남성 호르몬 주사같은 걸 맞어봐?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하하. 그럼 머리칼도 굵게 많이 나고 어깨도 좀 넓어지고 뼈대가 굵어질지도 모르잖은가 말이다. 흠... 잘못하면 수염이 날수도... ㅋㅋ
뭐 여하간 나같은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방실이나, 양희경, 혹은 요리사 이혜정 같은 사람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설마 게으르고 돈 없어서 투실한 몸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남성호르몬이 강한 사람은 조혜련이나 그 몸짱아줌마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젠 체형이나 골격따위만 봐도 대충 체질을 판별해낼 지경이다. ㅎㅎ
내가 한없이 야리야리했던 때가 있었는데 아마 스무살 무렵까지 였을 것이다. 그때는 꽤 중증의 결핵을 앓고 있을 때여서 얼굴은 발그레 하거나 창백하리만치 희었던 시절이었다. 그거 다 낫고 어느 날 무릎이 시큰거려서 약국에 가 얘기했더니 지금 생각해보면 갱년기 장애에 먹는 활성 비타민 한 달치를 처방해줘서 그걸 먹었다. 그걸 먹고 정확하게 일년에 24킬로가 늘었는데 그게 오늘까지 이어져서 이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어쨌거나 의사랑 상담하면서, 내가 나름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돼지처럼 먹어대거나 방구석에서 빈둥대며 뒹굴거리는 짓 따위도 안 하고, 수영장에서 서른바퀴를 돌아도 숨도 안차고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산이나 양재천엘 간다는 말을 했는데 그녀는 물론 안 믿는 눈치였다. ㅋㅋ
그리고는 한 마디 했었다.
"대체 그 살이 다 어딨어요?"
그럼에도 혈압도 지극히 정상이고, 제법 침침해지기는 하지만 눈도 나빠지지 않았고, 머리도 세지 않았으며 만성피로 따위도 없이 건강하다. 이렇게 생체에너지를 아끼고 아껴 쓰니 길고 오래 살 게 분명하다. 그게 좋은 것인지 어쩐 것인지 모르지만... 하하.
하여 비만 치료제인 리덕틸을 처방받아 왔다.
식욕억제제가 아닌 포만감 증진제-??-종류인 모양인데 이성과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계몽주의자인 나는 온 인터넷을 뒤지고 경험자들의 말을 찾아보고 해서 믿을만 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공인된 비만치료제는 딱 두가지-리덕틸과 제니칼. 그래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라는데 제니칼은 지방흡수 억제제라 기름이 그냥 대변으로 나와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한국사람에게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뭐 내 평생 살빼자고 정체불명의 약이나 침이나 식품이나 이런 것 먹어본 적 없으니까 얼마나 순수하게 흡수되어 효과만빵일까 자못 기대가 됐지만 결국 아직까지 한 알도 안 먹었다. 하하.
머리 가볍게 혈압이 높으면 혈압 강하제 먹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을 그게 잘 안된다. 게다가 그 약이 나처럼 운동요법이나 식이요법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고도비만의 경우에는 직빵이라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실실 살이 내리는 중에 먹으면 훨씬 효과적이겠지만 좀더 미련하게 노력해보고 먹을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두뇌활동이 가장 필요한 것이 순수한 탄수화물... 이라는데 그걸 너무 줄이면 머리 나빠지거나 머리가 안 돌아 갈 게 분명한데 나쁜 머리로 아이들 가르칠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기초대사량 1288은 아무것도 안하고 숨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80노인네의 대사량 정도일 것이다.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나마 재작년엔 1290이었는데.. 하하하
내가 비만이 질병이라고 확실히 인식되야 이부프로펜 성분의 진통제 복용하듯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리덕틸... 이것은 비만 치료제인데 문제는 비만도 아닌 사람들이 몇 킬로그램 빼자고 먹는다는... 오용과 남용의 실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