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단칸셋방에 관한 소고.

오애도 2002. 2. 19. 02:36
내가 살고 있는 집은 4층입니다.
3층엔 주인이 살고, 그 집 대문을 거쳐 한 층 더 올라오면 우리집이자-??- 방이 있습니다.
그 4층 전체-?-가 내 집입니다.
커다란 방 한 칸에 쬐그만 부엌, 그리고 목욕탕 겸 화장실...

자랑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나는 오랜 서울생활동안 줄곧 단칸 셋방을 전전-?-했습니다.
그 한 칸의 방이 침실이자 서재이자 식당이자 리빙룸이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이 집으로 이사오기 일년 전쯤에 어찌어찌한 사연으로 방이 두 개고, 부엌 겸 거실이 있는 그야말로 세 칸짜리 집에서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남동생과 같이 살기 위해서였는데 동생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때는 마루에서 밥먹고 티브이 보고, 잠은 침실-??-에서 자고, 옷은 또 다른 방에서 갈아입고, 하는 식으로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며-??- 사용했는데 그게 영 심난스러웠었습니다.
잠자려고 누우면 옆의 빈방에서 느껴지는 공간감이 꽤 적막했고, 거실에 나와 있을 때 안방의 불을 켜 놓아야 하는가 하는 갈등도 생기고, 거길 켜 놓으면 괜히 불꺼진 작은 방의 공간감이 또 사람을 영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땐 방마다 불을 켜놓고 마루에서 티브이를 보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군데 불을 켜놓고 혼자 가만히 있자면 묘하게 무서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습관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나는 다시 단칸 셋방의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장롱 옆에 컴퓨터가 있고, 그옆에 다시 커다란 책상이 있고 그 옆에 침대가 누워있고, 다시 그 옆에 화장대이자 서랍장이 있고, 그 옆에 키 큰 서랍장이 있고 한쪽 벽에는 책이 있고 그 앞에 티브이가 있고... 이런 식입니다. 모든 사물-??-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뭔지 모를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어쨋거나 내게 없는 욕심에는, 넓고 커다란 집에 대한 것과 자동차에 대한 것 두 가지가 두드러집니다.
뭐 여우와 신포도의 논리로 구할 수 없으니까 필요치 않다고 자기합리화 한다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넓은 집은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고, 차는 다른 의미의 능력-운전-없어서 또한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위험한 물건은 만지지 못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언젠가는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내 꿈은, 돈을 많이 벌면-뭐해서??- 시골 내려가, 창 넓고 마당 넓고 내 방 넓은, 딱 방 두 개짜리 집을 짓는 것입니다. 왜 방이 두 개냐 하면 늙으신 울엄마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 때쯤 작고 귀여운 소형차나 한 대 사서 시내버스 못 들어오는 좁은 길을 탈탈거리며 경운기처럼 타고 다닐 생각입니다. 후후후
친구 중에 건축과 나온 친구가 그 말 듣더니 설계는 자기가 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뭐 나와 마음이 잘 맞으니까 분명 내 맘에 들게 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게다가 더 고무적인 일은 지난 여름 선 본 남자가 그러더군요. 누구든 집을 짓겠다는-갖고 싶다거나 사겠다는 것이 아니라-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집을 짓더라고... 그것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짓고야 마는 것을 많이 봤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훌륭한 미덕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잡을 걸 그랬나?^^-

어쨌든 단칸셋방이거나 말거나 내 방에 처음 온 사람들은 모두들 내 방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또한 좋아합니다. -그래서 친구 하나가, 혹 내가 아파트같은 걸 사서 이살 가게되면 자기가 와서 살겠다고 찜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 했더니 그럼 시집을 가라고 하더군요. 그게 가장 확실하게 이 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남자나 소개시켜주면서 그러면 또 몰라!!-_-;; -
그러나 그 부러움은 결코 재산적 가치로서의 집에 대한 부러움은 아닐 것입니다.
한 칸의 방과 한 칸의 부엌과 한 칸의 화장실이 주는 지상에서의 행복!!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정말 그 속에서 나는 고요하게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 행복의 냄새를 맡아서가 아닐까하는 자아도취적인 생각을 해 봅니다. 후후

오래 전에 읽은 톨스토이의 동화집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온 얘기였을 것입니다. 하루동안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농부는 종일 무리해서 넓은 땅을 걷게 되지요. 아마...
그러나 그 농부는 끝내 지쳐 죽게 되고, 죽은 그를 묻었을 때, 그가 차지한 땅이라곤 자기 키만큼의 면적이었습니다.
가끔 욕심없는-??!!- 내마음이 불안할 때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에고, 그러다가 자기 몸뚱아리 묻을 만큼의 땅도 확보 못하고 죽는 건 아닌지 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