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나를 키운 것은 그래도 고향의 바람이다??!!

오애도 2002. 2. 10. 02:30
열 네살에 출가-??-를 했으니까 햇수로 스물 네 번을 설을 쇠러 시골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물 다섯 번째 시골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스물 안쪽의 나이였을 때, 그러니까 언제나 집엘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때는 명절날이란 게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집엘 가 봤자 역시나 엄마 대신 종일 전을 부치거나 송편을 만들었지만 말입니다.
어딜 가나 지지리 일복이 많았던 것이지요.
울엄마는 명절이 대목인 바로 산 너머에 있는 휴게소에서 일당 이만원을 받고 하루 열두시간 씩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셨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사 준비는 내 차지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올케를 둘만 얻으면 나도 이 생활 땡이다. 시골 안 내려오고 한 사흘 여행이나 가는 거다. 하고 자못 비장하게 결심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사촌 올케들한테 그랬었습니다. 내년엔 나 없을 거다. 내가 이 나이에 이렇게 제사준비나 해서야 되겠냐. 내 친구들은 명절날 여유작작하게 노는데 이게 뭐냐. 다음 명절엔 나 진짜 안올거다.......
그러고는 다음 명절에 또 가서 탕국 뜨고, 잡채 무치고, 식혜 퍼주며 먹으라고 하면 그녀들은 '아가씨, 안내려온다매?' 하고 놀립니다.

그런데 지금, 어찌된 일인지 올케가 셋이나 되지만 나 안 내려가고 삼박 사일 홍콩이나 갈껴 하는 말 따위는 꺼내 본 적도 없습니다.

성질 더러운 나는 원래 남의 말 잘 안 듣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울아부지 울엄마 말도 안 듣습니다. 말하자면 지 하고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집을 가라고 옆구리를 찌르거나 말거나 그것가지고 진짜 스트레스 받아본 적 별로 없었습니다. 뭐 그다지 스트레스를 준 적도 없었구요. -요즘 울아부지가 실실 시집 안가고 있는 것을 꼬투리로, 니가 백날 똑똑한 척 해봤자 그러구 있으면 모자라는 인간이라는 논조로 약을 올리시지만 난 눈도 꿈쩍 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결혼같은 걸로 부모님하고 언성 높이고 얘기했던 경우도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내맘대로, 혹은 나하고 싶은대로 살고 있는데도 꼭 하나 내 맘대로 안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명절 날 집에 가는 것입니다.
어느 땐 한시간 반이면 가는 곳을 열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고 또 올라오려면 그것 역시 만만찮은 작업입니다. 차안에서 예닐곱시간을 주리를 트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에잇 가는거 그만두자 하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내가 집을 떠난 것은 열 네살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나 있는 동안 집엘 갈 수 있는 날은 끽해야 명절날이 전부였던지라 일년에 열흘 안짝을 집에서 보냈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아직도 우리집은 바로 내일 내려가는 그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틱 무시할 만큼 가벼운 종류의 마음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이젠 퇴색할 대로 퇴색한 고향행을 아직까지 한 번도 빼먹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고향에 가는 일이 가슴이 설레거나 대단히 즐겁거나 기다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럴럴하니 서울 집에 남아서 한가한 서울거리나 어슬렁거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감히-??- 안가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못합니다.

어느 시인의 싯귀에 나오는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 하는 식으로, 나를 키운 게 사반세기를 살아온 서울이 아니라, 일년이면 열흘 남짓밖에 안되는 고향에 있는 울엄마 아부지의 그늘이 팔 할이 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사족: 설 잘 쇠시길 바랍니다. 혹 멀리 가시는 분들 건강하게 다녀오십시오.
아름답고 좋은 한 해 되시구요,
원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 꼭 하나는 반드시 이루어지시길 빌겠습니다.
한 해 동안 이 곳을 사랑해주신 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