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 가득한 날들...
그냥... 말없이 걸어다녀도 서정 가득한 공기가 떠 다니는 11월의 날들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데 은행잎들은 우수수, 노란 눈보라처럼 휘날린다.
고여 있는 물처럼 나는 세상에 대해 무감해 하면서 '나'로 살아간다.
사는 일이라는 게 고정적인 것이 아니어서 보면 그렇게 몰려오고 몰려가는 양상을 보인다.
나는 점점 '나'에 침잠한다. '나'와 관계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지 않고, '내'가 마음 두지 않으며, '내'가 가치있다고 여기지 않는 일에는-사람도- 어찌하여 점점 일말의 호기심도 일어나지 않는가 말이다.
흠...
물론 이 증세도 어느 순간이 되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게 어디 있으랴...
나는 우울한 인간은 아니다. 아니 근원적으로 우울, 심심, 따분, 무기력... 이런 거 못 느끼는 다분히 장애적인 인간이다. 어디서 보니 사유와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이런거 없다는데 나는 독서는 별로 많이 하는 것 같진 않고,-^^;;- 사유는 정말 많이 한다. ㅋㅋ. 그게 망상이든 철학이든...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혼자'이거나 '홀로'임을 즐긴다는데 나는 분명 그 망상을 곁들인 사유 때문에 이렇게 혼자 있는 거에 진력 내지 않고 사는 게 아닐까? 누가 뭐라든 망상이 잦아드는 날이 오면 그게 내가 죽을 날이 된 것이다. 여하간 가을 날의 우울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봤다. 가을날의 쓸쓸함이 우울함인지 잠시 헷갈렸지만 우울은 우울이고 쓸쓸함은 쓸쓸함일 뿐, 색깔이 전혀 다르다.
비 내리는 토요일... 모처럼 친구와 산행을 했다. 허겁지겁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달거리통으로 묵직한 배를 안고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놀라우리만치 빠르고 성급하게 시간은 성큼성큼 흐르고 늦가을 밤은 깊어간다.
이웃에 사는 아이가 가져다 준 모과 향기가 은은하다. 가을의 풍성함과 뿌듯함처럼 그렇게 밀도 높게 향기가 내 작은 방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