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상, 삶, 그리고...

겨울이라서... 그리고 혼자라서...좋다!!

오애도 2002. 1. 22. 19:19
운동하려고 중무장을 하고 나갔다가 추워서 다시 들어왔습니다.

하늘엔 총총 별이 떠 있고, 차갑고 맑은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낮에 부린 변덕은 아마 쫓겨가기 싫은 겨울 더위-??-의 발악이었던 모양입니다.
머리채가 날아갈 듯이 휘둘렸습니다. 아까 미장원에서 돌아오다 보니 비디오가게 앞에 있던 커다란 화분이 바람에 쓰러지더군요.

그냥 가? 말어?
날아갈 듯 불어대는 바람을 맞으며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습니다.
결국 낮에 영어학원까지 걸어갔다 왔고, 은행일 보러 왔다갔다했으니까 운동은 적당히 됐겠지 싶어서 포기하고 들어왔습니다.
에잇 가지 말자, 안한다고 누가 때리지도 않는 걸 뭐^^ -이거야말로 혼자 사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내가 정해놓고 가끔 그걸 어길 때 오는 이상한 쾌감-변태적인가?!!- 푸힛-
들어오니 방바닥이 따땃한 것이 환장하게 기분 좋더군요.
낮에 먹은 감기약기운 탓에 몸이 녹작지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안가길 잘했습니다. 아침 내 재채기에 콧물 질질 나는 증세 있다는 걸 깜빡 했거든요.

출근이 없는 날, 어떤 때는 종일 밖에는 한 발자국도 안나갈 때도 있습니다.
방안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만을 왔다갔다 하지요.
바깥소식은 라디오로 듣고-교통상황, 날씨 이런 건 수시로 전하니까-심심하면 책 읽고, 커피 마시고, 전화로 수다 떨고 그러다 지겨우면 창문 열고 멍청하게 밖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낮을 보내고 저녁 어스름이 찾아와 방의 불을 켤 때는 왠지 모르는 아릿한 슬픔과 따뜻함, 그리고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함께 느껴집니다.

어릴 때 엄마가 없는 겨울 저녁 무렵은 너무나 쓸쓸하고 서러웠었습니다.
해는 뉘엿거리는데 불기가 없는 부엌은 썰렁하게 적막하고, 텅 빈 마당에 서 있으면 참을 수 없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런 기억에 비하면 이처럼 혼자 맞는 저녁에 따뜻한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변화입니다.
나일 먹어 철이 든 탓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홀로 산 것에 대한 익숙함에서 오는 무디어진 감정 탓일까요?
적어도 창밖으로 어스름이 내려오는 모습만 보이지 않으면 됩니다.
자꾸 얘기하지만 나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창문을 꼭꼭 닫고 있으니까 적나라하게 저녁 어스름을 보지 않아도 되고, 그리하여 그 순간에 오는 슬픔과 허무를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갔다가 꽁꽁 언 몸을 따뜻한 방바닥에서 녹일 때의 행복을 아시는지...
침대 옆구리에 몸을 기대고 따뜻한 담요로 무릎을 덮고 있으면 엉덩이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
게다가 티비에서는 여섯 시 내고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고, 내용중에 맛있는 순두부 만드는 장면이라도 나올라치면 그야말로 겨울 정취로는 최고입니다.

누가 뭐라든 이렇게 추운 저녁, 조용히 따뜻한 방에 누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혼자여서 좋다고 하면 자랑이 아니라 시위로 보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