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 칼국수 속의 우수
집요하게 손칼국수를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티비에서 시골 아낙이 투박한 손으로 밀가루를 치대고 국수를 밀어 마당에 솥을 걸고 칼국수를 끓여 대접에 담아 마루에 둘러앉아 먹는 모습을 보고난 후 부터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난 그거 아주 잘 만든다. 밀가루에 소금 넣고 반죽해서 홍두깨로 얇게 밀고, 멸치 국물에 조선 호박하고 국수하고 넣고 끓인 후에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매운 고추랑 고춧가루랑 파 마늘 넣어 양념간장 만들어 먹으면 되는데 난 간장 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그것 없이도 잘 먹는다. 대신 자알 익은 열무김치 척척 얹어 먹으면 된다. 좀 세련되게 김가루나 뭐 그런 걸 올려볼까?? ㅋㅋ.그러고 보니 혼자 살면서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인데 그건 순전히 홍두깨 없어서이다. ㅋㅋ
어릴 때 울엄니가 국수 반죽을 해서 홍두깨로 밀때면 우리 형제들은 동그랗게 주위에 앉아 있었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엄니는 국수를 미셨고 그것이 다 밀어지면 착착 접어 또깍또깍 썰고 꼬랑지 남을 때 쯤이면 우린 눈을 빛낸다. 엄니는 끝쪽의 썰다 만 국수 꾸랑지를 우리에게 넘기시고, 우린 그걸 들고 콩대나 깻대 따위로 불을 때는 아궁에에 붙어 앉아 그걸 구워 먹는 맛이란...
생각해 보면 그 맛은 이태리피자의 얇은 도우맛이었다. 뭐 그 국수 반죽에 토마토 페이스트나 좀 얹고 치즈나 솔솔 얹어 구우면 담백한 피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쨌거나 울엄니는 그렇게 끓인 국수를 한 대접 퍼주셨는데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늙으신 울엄니, 기운 없으셔서 해달라 소리 못한다. 내가 해먹어도 되지만 당연히 엄니가 해 주신 게 훨 맛있을 것이다.
여하간 오늘처럼 비가 추적거리는 날엔 면빨이 땡기는 날이다.
아침 나절에 추적이는 빗속을 뚫고 산엘 갔었다. 막걸리 반 통을 들고 가서 호박 부침개 해서리 원두막에서 지인과 더불어 권커니 잣커니 했다. 비 오는 날의 낭만이다.
돌아와서 문득 그렇게 면빨이 땡기길레 인스턴트 칼국수 한 봉지 사다 끓여 먹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봉지 칼국수 한 그릇의 우수를 느낀다.
그렇게 어떤 것은 너무 쉬운데 그렇게 쉬운 것처럼 세상을 쉽게 살고 있는가 나는...
비 오는 저녁... 한없는 평화와 고즈넉함과 우수...
잘 벼려진 칼날처럼 오로지 나 자신의 존재를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