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이 좋다!! 3
수분 많고 금방 물러지기 쉬운 야채들이 제 철입니다. 호박이며 가지, 오이 열무 상추 같은...
산행하고 돌아올 대면 길목마다 직접 가꾼 야채들을 들고 나와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이는 굽었고, 상추는 쇠었으며, 호박은 지나치게 크고 못생겼거나 작고 꾸부정하지요.
종종 돌아오는 길에 그런 것들을 사다가 제법 여름반찬을 해 먹습니다.
작고 못생긴 조선가지는 사등분해서 다시 사등분으로 잘라 들기름으로 볶습니다. 이건 진간장으로 볶는데 마늘과 양파만 쬐끔 채썰어넣어도 들큰하고 물컹한 가지 특유의 느낌이 좋아 자주 해 먹습니다. 만드는 데 오분도 안 걸리구요. 호박은 착착 반달 썰기를 해서 잠깐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짜서 파랗게 마늘과 역시 양파 아주 조금만 채썰어 함게 볶습니다. 엊그제 울엄니가 갖고 오신 깻잎절임이나 열무김치 마늘쫑 호박잎 같은 것도 있으니까 자알 차리면 한정식 상차림입니다. 저렇게 볶은 나물이랑 열무김치랑 넣고 고추장 한 숫갈 넣어 비빔밥 해먹으면 죽입니다. 비름나물도 좋아하는데 이건 고추장으로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맛있지요. 비빔밥 좋아해서 나물 듬뿍 넣어 비벼 먹습니다. 며칠 전엔 오이소박이를 담았는데 어쩌자고 간이 좀 세서 거의 짱아찌 수준입니다. 소금에 절이면서 잠시 딴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
어제는 호박잎을 쪘습니다. 아무래도 시골에서 따온 호박잎은 시장에서 파는 호박잎과는 다르지요. 먹기좋고 연한 잎들만 골라 딴데다 호박의 종자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쌀뜨물을 자작하게 붓고 집에서 갖고온 된장이랑 파는된장 약간 섞어서 고추장과 고추가루 조금씩, 멸치가루와 호박잎에서 나온 줄기, 다진 마늘 듬뿍-된장과 마늘은 잘 어울린다-넣어서 끓이다가 우렁살 듬뿍 넣어 자작하니 바글바글 끓여 쌈싸먹는 것도 좋구요. 감자랑 양파-이건 된장찌개에 많이 들어가면 들큰해져서 칼칼한 맛을 떨어뜨린다. 집된장의 센 맛을 중화하기 위해 약간만 넣는다. 양파 듬뿍 넣어 들큰해져 니맛도 내맛도 아닌 된장 찌개... 내가 싫어하는 것-조금, 역시나 호박잎 줄기 뚝뚝 잘라서 청양고추랑 홍합 넣고 약간 짭짤하게 끓여 찐 호박잎 푸욱 담갔다가 밥 위에 척 걸쳐 먹을 만큼 물을 넉넉하니 붓고 끓이는 것입니다. 이건 어릴 때 먹던 충청도식 방법인데 서울 와서 호박잎을 간장이나 그냥 쌈장이나 고추장에 싸먹는 거 보고 놀랐다는...
역시 사람은 우물 안 개구리나 다섯 개의 완두콩 같은 어리석은 부분이 있는 듯 싶습니다. ^^;;
여하간 된장찌개 안 끓여서 호박잎은 쪄놓기만 하고 먹진 않았습니다. 우렁살도 샀으니까 오늘 저녁에 해 먹을 생각입니다. 어제 저녁반찬이 너무 많아서리... ㅋㅋ. 혼자 먹는데 너무 많은 반찬을 내놓고 먹는 것도 괜히 찔려서리......
한참 전에 친구를 초대해 그야말로 그냥 '밥'을 해 줬습니다. 시골 서 막 돌아왔던터라 반찬이 제법 많았는데, 그친구는 지나가면 누구든 한 번 돌아볼 만큼 미인이었는데 입맛은 완전 토속적이서 깻잎이며 된장찌개에 뻑 갔습니다. 뭐 어쩌자고 그때는 동그랑 땡까지 조물조물 만들어 부쳤었는데 그건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반찬이 많으면 자기는 화가 난다구요. 먹어도 먹어도 별로 먹은 것같지도 않게 표도 안 나고-반찬이 많이 줄지 않으니까- 배는 한정적인데 맛있는 거 너무 많아서 한가지만 먹을 수 없어서요. ㅋㅋ. 뭐 나도 한상 떡 벌어지게 이것저것 반찬 늘어놓고 먹는 것보다 사실 일품요리를 좋아합니다. 너무 많은 종류를 먹다보면 그 음식이 갖고있는 본연의 맛과 특성을 음미하지 못하거든요. 게다가 먹고 나면 뭘 먹었지? 가 되버리지요. 생각해 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이와 비슷한 듯 합니다. 여럿이 만나 유쾌하게 떠들고 놀았는데 뭘했지? 되기도 하고, 그저 뭉뚱그려서 참 유쾌하고 즐거웠네가 되기도 합니다. 대신 일대일로 이러구저러구 새새거리다 보면 뭐 나름 깊이 있게 서로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내면의 깊이를 끌어내기도 합니다. -얘기가 옆길로 새는군- 어떤 것을 선호하느냐는 각자의 취향이자 성향일텐데 나는 물론 식성과 성향은 닮았다고 믿는터라 단연 후자쪽입니다. 뭐 그렇다고 일품요리 좋아한다고 한정식이나 코스요리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그것도 아주 자알 먹습니다. 고로 난 먹는 것은 무엇이든 다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퍽퍽!!! 얘기를 제자리로 돌려서, 어쨌거나 나는 밥이 좋습니다. 요즘은 점점 더 밥이 좋아집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들이 이것저것 들어가 있어도 예전처럼 화악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이상하게 밥은 언제든 언제든 언제든 똑같이 맛있는 자태로 나를 유혹합니다. 하여 살을 빼야 하거나 말거나 엊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따뜻한 밥에 열무김치, 나물 넣고 쓱쓱 비벼 한 그릇 뚝딱 먹어치웠습니다. 살이야 지가 알아서 나가기나 말기나 말입니다. 배부를 때까지 먹고 싶지만 그것만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래도 몸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할 것 같아서...^^;;
할 일 많은 금요일입니다.
산에도 가야겠고. 머리도 잘라야겠고, 친구가 부탁한 신발도 사러 가야겠습니다. 아침에 빨리 산에 갔다와서 수영까지 가는 게 계획이었는데 계획과 약속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뭔 소리여??!!- 벌떡 일어나야겠습니다.
행복하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