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누나가 문 고친 날... 영화[가족]
내일 중요한 임무-자신과 가족을 괴롭히는 나쁜놈-??-을 살해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딸은 오랫동안 말썽을 부리던 화장실 문을 고칩니다. 그날 저녁상에 아버지는 건강때문에 멀리했던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를 갖고 옵니다.
'오늘같은 날은 사나이들끼리 한 잔 해야 하는 거야.'
어둡고 병들고 늙은 아버지는 한참이나 어린 아들에게 소주잔을 권하면서 말합니다.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인데?'
밝고 건강고 어린 아들은 묻습니다.
'오늘......누나가 문 고친 날....'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그 옆에 딸이 앉아 있습니다.
누가 뭐라든 내게 있어서 이 영화의 압권입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자신이 느낀 것이나 알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말하며 사는 것일까요?
영화 속의 아버지와 딸은 다음 날이면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알고 있고 또 각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지만 한마디도 안 합니다.
그리고 그 팽팽하지만 덤덤해 뵈는 풍경 속에 녹아 있는 한없는 애달픔을 느끼는 것은 바로 관객의 몫입니다.
'누나가 문 고친 날......'
덤덤하게 내뱉는 듯한 아버지의 대답은 순간 관객들로 하여금 -나만 그랬는가??- 팽팽하게 고여있던 눈물과 함께 쿡 웃음이 터지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에는 한없는 비애감과 더불어 뭔지 모를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영화 속에서 딸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관객들은 아마 그것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의 슬픈 언어였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파토스-pathos 페이소스??-의 극치이지요.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이 가벼운 말장난으로 인한 쿡쿡거림으로 넘어가게 하지 않는 것은 아마 배우 주현의 빼어난 연기 탓일 것입니다.
그건 애드립이었을까요? 만약 시나리오 상의 대사였다면 배우 주현의 뛰어난 연기는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물론 그것 말고 더 눈물을 솟게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쁜 놈-??-에게 차에서 끌어내려져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칼을 휘날리며-??-딸이 일하는 미장원 앞에 섰을 때의 장면 같은 것......
물론 삐딱하게 보자면 지나치게 과장된 면도 없잖아 있지만 어떤 이성적 논리도 앞서는 것이 감정이고 그것을 자극하는 것은 바로 시각일 것입니다. -거기서 갑자기 관객들의 쿨쩍이는 소리가 더 커졌다.-
아버지와 딸의 해묵은 오해와 갈등. 약한 아버지-거기다 불치병까지?-, 지나치게 잔인한 반동인물, 숨겨진 비밀이었다가 드러나는 사실, 지나치게 과장된 부정(父情)...... 너무나 잘 짜여서 군더더기 없어 보이지만 그만 그게 군더더기-??-가 됐다면 이건 지나치게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는 것인가??.
어쨌거나, 그래도 정말 그래도 옛날 최루성 영화에 비하면 배우들은 울지 않고 관객을 울린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발전입니다. 그리고 거인같은 배우 주현에 맞서-그의 연기는 가히 존경할 만 하다.- 신인배우 수애의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는 아마 꽤 이상한 모양이 되었을 것이고 당연히 순수하게 엉엉-??-우는 관객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가족은 무엇입니까?
영화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여 고백하자면 내게 있어서 때때로 가족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기도 하고 한없는 위로와 안도와 평안을 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가족이란 결코 행복과 기쁨일 수만은 없지요. 왜냐면 때때로 굴절되고 흔들리긴 하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거나 혹은 사랑해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당연히 희생과 고통과 슬픔이 따릅니다.
그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건 진실된 사랑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영화 '가족'은 아픈 사랑얘기입니다.
사족:: 이거 누가 영화 '가족'홈피에다 감상 써보라고 해서 썼는데 어째 영 별로 맘에 안듭니다.